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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신간 평가단 첫 활동을 시작함에 앞서, 누군가 서재에 들어와 네가 뭐길래 신간평가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진다면 정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제를 위해 읽어내는 책을 제외하면, 나는 1년에 책을 열 권도 스스로 찾아 읽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내게 책을 읽어야 할 의무를 주고 싶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엔 이 의무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간절함을 제치고 얻게 된 활동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신간평가단으로 선발되었을 때 기쁨은 잠깐, 묘한 죄의식이 밀려왔다. 책도 잘 안 읽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를 대표해 '평가'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책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아무 것도 아닌 평가단'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다.

 

 초등학생 때는 매주 도서관을 찾았다. 대출수는 3권으로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2시간을 꼬박 어린이실을 빙빙 돌며 일주일 동안 나와 함께 할 책을 골랐다. 초딩의 기준은 별 것 없었다. 우선 책표지가 예뻐야했고, 더럽지 않아야했다. (무려 폰트까지 신경을 썼다.) 그리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야했고 한 바닥 정도 읽었을 때 어렵지 않아야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책 뒤에 있는 짤막한 줄거리와 홍보문구였다. 어, 맘에 들어. 싶으면 고르는 거였다. 그 시절의 내가 '이 작가의 책은 꼭 읽어야 해!', '이 출판사의 주목신간은 볼만하지!' 와 같은 책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객관적인 가치를 염두할 리가 없었다.

 

 지금의 나라고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초딩 때 쌓아온 독서력은 고등학생 때 별 노력없이 얻었던 언어영역 점수에 다 쏟아부어진 후, 지금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나는 정말 텅텅이다. 그래서 미리 말하고 싶었다. 앞으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고르는 기준 역시 초딩의 기준만큼이나 깊이 없고 겉핥기 식이라는 걸. 하지만 그 얕은 기준이라도 꼬박 2시간을 걸쳐 골라 낼 의지는 충분하다는 걸. 

 

 나는 아무 것도 아닌 평가단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기준도 될 수 없다. 오로지 나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취향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처럼, 열심히(는) 하겠습니다! 하고 무대포로 대답한다. 미안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뒤로하고, 누군가에겐 '이런 애도 신간평가를 하네'라는 용기를 주거나 동질감에서 오는 공감을 얻기를 바라며 첫 신간평가단 활동을 시작한다.

 

 

 

  1.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ㅣ 안보윤 ㅣ 문학동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이며,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비교적 안녕한'이라는 수식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 소개에 인용된 문구를 바라본다.

 

' 저기, 집이 한 채 불타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집이다.
 아는 집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목을 다시 보며 책의 내용을 짐작 해본다. 아마도 당신은 불타고 있는 누군가의 집을 바라보며 '나의 집은 비교적 안녕하군' 이라는 안심을 중얼거리고 있다. 대충의 줄거리를 읽다보니 '당신'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를 화자로 한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당신도 될 수 있고 당신의 이웃도 될 수 있다. 읽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재미를 느끼는 만큼이나 내 건조한 관조에 거울을 마주한 섬뜩함을 느낄 것 같다. 

 

 

 

  2.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 토마스 베른하르트/ 배수아 역 / 필로소픽

 

 책 표지가 마음에 든다. 살짝 틀어진 고개, 삼백안의 눈동자, 굵게 파인 이마의 주름, 이죽이는 입. 사회의 찌꺼기라는 찌꺼기는 죄다 포착하고 분노하느라 온갖 화상을 입은 듯한 인물의 그림이다. 책 소개를 본다 '인간혐오자의 그로테스크한 우정'. 책 표지가 저렇게 탁월할 수가 없다.

 

천재와 광기, 그 얇은 차이를 의심해 봤다면.
늙음과 죽어감에 대한 철학적인 소설을 원한다면.

 

그러한 당신이라면 이 책을 읽길 바란다며 출판사는 말했다. 개인적으로 천재 또라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에 <에브리맨>을 읽고 늙음과 죽어감에 대한 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게다가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소설가인 '배수아'의 번역이라니, 더 기대되는 지점이다.

 

  3. 청춘파산 ㅣ 김의경 ㅣ 민음사

 

 개인적으로 '청춘'이라는 말은 나에게 애증의 단어다. 모두들 나에게 청춘이라 말을 하며 응원을 보낸다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고개를 숙여 어린 척을 한다. 그들이 응원하는 '청춘'에는 열심히 열정적으로 달려나가는 젊은이를 뜻할텐데, 나는 아직 그 찬란한 그룹에 속하기에 멋지지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청춘'이라는 말을 동경한다. 어떻게든 그들이 말하는 그 멋진 '청춘'이 되고 싶다.

 하지만 '청춘파산' 이라니. 어떻게보면 시도때도 없이 퍼지고 있는 청춘마케팅, 청춘상술에 편승하는 제목이 아닌가싶어 반감도 들지만 '파산'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회색 도시에 저마다 예쁜 색의 노란 우산을 들고 있지만 옥상 위에 올라 서있어 불안해 보이기만 한다. 대충의 줄거리를 훑어본다. 제목 그대로 청춘이 파산 당하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단다. 읽고 싶다. 파산과 함께 내일을 저당잡힌 청춘. 출판사의 홍보 문구에 마음이 꽂혀버렸다. 가끔 나를 불쌍하게 말하는 소설도 읽을만 하다.

 

 

  4. 책방주인 ㅣ 레지 드 사 모레이라 ㅣ 이희정 역 ㅣ 예담

 

 책방 주인. 개인적으로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거기다 그 공간이 '책방'처럼 무언가 소담한 인물들이 모일 것 같은 곳이라면 더 좋다. 소개된 책 속의 문장 몇개를 읽어보니 더 마음에 든다. 형제와 누이를 위해 책 속의 페이지를 주저없이 뜯어 우편으로 보내는 책방 주인이라면 책방으로 돈을 벌기 위한 사람은 아니다. 그야 말로 '책방의 주인'이 이야기하는 책방의 이야기. 카페 주인 만큼이나 낭만적인 풍경이 그려지고, 또 부러워지기까지 하는 이 사람의 눈에 어떤 모습들이 담겨 있을까 궁금해진다. 요즘 너무 어려운 소설들을 과제때문에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런 자극없고 담백한 소설이 끌린다. 더구나 오늘같은 봄날씨에 책방 구석에 앉아 읽고 싶어지는 소설.

 

  5.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ㅣ 김중혁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나는 아는 작가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작가를 보며 소설을 찾아 읽는 일은 정말 드물다. 하지만 그 두문 경우 중 하나가 '김중혁의 소설을 읽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펭귄 뉴스>라는 단편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펭귄'+'뉴스'만큼이나 섞이지 않을 소재들을 엮어 새롭지만 공감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스타일에 푹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도 그 책을 재밌게 잘 읽어서, 그 감동이 반감될까 다른 작품을 읽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냥 게을렀던 탓도 있다) 하지만 이제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가타부타한 말들 치우고 그냥.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이 문장에 끝났다. 정말 너무 엄청 읽고 싶어졌다. 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운이 생긴다.

 

 

 

 

 

 

3월에 찾아온, 4월에 보고 싶은 책들.

4월에 꼭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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