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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쓰는 연개소문傳 (김용만/바다출판사)
  •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l 김용만 (지은이) | 바다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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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p308-309

    1999 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의 발언 어쩔 수 없었던 중국화

     

    대외팽창론의 한무제 사후 현실론 등장 염철론으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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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마법의 순환.

     콜럼버스 1백년 뒤의 왕자들과 은행가들은 콜럼버스의 후계자들에게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신용대출을 해 주고 싶어했다. 신용대출은 새 발견을 위한 자급을 공급했고 발견은 식민지로 이어졌고 식민지는 수익을 제공하고 수익은 신뢰를, 신뢰는 더 많은 신용대출로 바뀌었다. 

     누르하치와 나디르 샤는 수천킬로미터를 전진한 후에 연료가 떨어졌지만, 자본주의 사업가들은 정복을 거듭하면 할수록 재정적 탄력이 더 붙었다.(p448) 

     

     1717년 프랑스의 미시시피사는 미시시피 하류에 뉴올리언스시를 건설, 투자 광풍을 일으키고 18세기 유럽 최대의 금융버블인 미시시피 버블을 야기했다. 결국 루이 15세는 신용대출을 더 받을 수 없었다. 이것이 프랑스제국이 영국의 손에 떨어진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p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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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의 시대 세계사의 전환과 중화세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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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가수 왕롱

    왕롱 사진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p384)

     

     1850년 이전에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기술적 격차는 크지 않았다.

     동양에서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된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던 것은  가장 중요한 신화와 사회구조를 이미 영국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과 페르시아는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회의 조직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 잡을 수 없었다.

     유럽인들은 과학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기술의 노다지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유럽인들은 다른 누구보다 그것을 잘 부릴 수 있었다. 과학과 자본의 힘은 나날이 강력해지고 있다.(pp397~400)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무슬림 경제학자들의 통찰을 배웠다.

     극동과 이슬람 세계에도 유럽 못지 얺게 지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1500년에서 1950년 사이에 이들은 뉴턴 물리학이나 다윈 생물학과  비슷한 것조차 만들어 내지 못했다.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165명의 학자를 데려갔다. 이들은 이집트학을 구축했고 종교, 언어, 식물 연구에 기여했다.

     15~16세기에 유럽인들은 빈 공간이 많은 세계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인의 제국주의 욕구뿐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세계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1492년 콜럼버스는 여전히 과거의 '완전한' 세계지도를 믿고 있었다. 무지를 인정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여전히 중세인이었다. 최초의 근대인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1499~15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아메리카를 탐험한 그는 콜럼버스가 발견한 섬들이 동아시아 연안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라고 주장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 주었다.(pp4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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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지 3백년만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할 때까지 다신교를 믿는 로마황제가 기독교인을 박해한 사건은 네 차례를 넘지 않았다.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명을 학살했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에서는 프랑스 카톨릭 교도들이 하루만에 개신교 교도 5천~1만명을 살해했다. 로마 교황은 이를 기뻐하며 바티칸 방 하나를 대학살에 대한 프레스코로 장식하게 했다. 이 방은 현재 방문객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pp.306~308)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성 브리지드, 성 안드레 등), 애니미즘 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이러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하나의 위대한 세계종교일지 모른다. (p317)

     

     마음은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불만을 낳는다.

     슬픔을 경험하되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는 집착을 품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슬픔을 느끼겠지만 그로부터 고통을 당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슬픔 속에 풍요로움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기쁨을 느끼되 그것이 계속 유지되고 더 커지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고타마는 명상기법을 개발했다."지금과 다른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보다  "지금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한다.

     권력 ,감각적 기쁨, 돈에 대한 집착의 불이 완전히 꺼지면 집착은 완벽한 만족과 평온의 상태로 되는데 이가 열반이다.(열반=불 끄기) 집착이 없는 사람은 고통 받지 않는다. Dharma=실재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도록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 불교의 보편적 자연법칙.(pp3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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