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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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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은 술술 읽히는데 어려웠다. 생각지 못한 전개에 하하 웃었다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에 부딪혀 읽었던 것을 다시 읽어보고 책장을 뒤적여야 했다.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으면 좋았겠다 그랬으면 더 재밌었겠다 아쉬움이 들었지만 구약성서에 실려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만 간간히 알아도 이야기 진행을 따라가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정작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던 건 주제 사라마구가 경쾌한 어조로 끈덕지게 어려운 질문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인간한테 신은 도대체 왜 필요한 건지. 신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 의미가 있는 게 무슨 소용인지 뭐 이런 질문들 말이다.


그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아들도 죽이라고 명령할까요, 이삭이 물었다. 시간이 말해 줄 거다. 그러니까 여호와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네요 좋은 일, 나쁜 일, 더 나쁜 일도. 그래, 할 수 있지. 아버지가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이삭이 물었다. 글쎄, 여호와는 보통 자신을 실망시키는 사람은 파멸시키거나 병들게 하지. 그러니까 여호와는 복수심이 강하군요. 그래, 내 생각에는 그렇다, 마치 누가 듣기를 두려워하듯이 아브라함이 조용히 말했다, 여호와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어. 오류와 범죄조차도요, 이삭이 물었다. 특히 오류와 범죄는. 아버지, 저는 이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이해해야 한다, 내 아들아  -98p


오, 아버지. 저는 저라는 존재도 이해하지 못하고 저의 아내도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낳아준 부모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 형제 자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저를 시험에 빠뜨리지 말게 하실지언데 주라는 존재조차 저를 시험에 빠드리게 하시고 왜 인간을 자꾸 시험에 들게 하시는 지 말해주지 않으시고 복종하게 하시니 그런 종교를 제가 어찌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책을 읽는 내내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카인>에서 그려진 여호와는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도 닮았고 폭력적이고 제멋대로고 속을 알 수 없고 장난기 넘치며 이기적인 그런 존재 같았다. 그리고 항상,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신과 인간의 사이엔 '계약'이 앞서 있고 그 계약을 인간이 어딘가면 벌을 받지만 신은 언제든 제멋대로 바꿀 수 있었다. (아, 이런 마음 붙일 데 없는 정 없는 신이시여!)


우리는 동쪽에서 이곳에 정착하러 왔지요, 모두 같은 언어를 사용했어요. 그 언어는 뭐라고 불렀나요, 카인이 물었다. 그거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이름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언어였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누군가 벽돌을 만들어 가마에 넣고 굽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만들었는데요, 카인은 진흙을 밟던 사람이었기에 자신과 동류인 사람들 사이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어 물었다. 늘 하던 대로요, 흙, 모래, 왕모래로요, 그리고 반죽으로는 진흙을 사용했고요. 그런데요. 그러다 우리는 커다란 탑이 있는 도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저기 저거 말입니다, 하늘에 닿을 탑이죠. 무엇 때문에요, 카인이 물었다. 그러면 유명해지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왜 쌓는 걸 멈춘 거예요. 여호와가 보러 왔다가 기분이 상했거든요. 하늘에 이르는 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들이 바라는 바잖아요, 당연히 여호와는 도와주었어야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죠. 그래서 여호와가 어쨌나요. 여호와는, 너희가 탑을 지었으니 이제 뭐든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였어요, 그래서 언어를 모두 섞어놓고, 그때부터, 보시다시피, 우리는 이제 서로 이해할 수 없게 된 겁니다. -103p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형벌은 사실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서로의 입장이 달라져 버렸고 여호와 앞에 각자의 입장을 설명해야 했다. 그 입장이라는 게 언어로 설명하기가 얼마나 껄끄러운가. 그리고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입밖으로 말을 내뱉기 시작하면 말이 어찌나 제멋대로 움직이는지. 그 말은 어찌나 자기 변론을 좋아하는지. '인간 본성이라고 부르는 불가해한 그림자극'에 관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고 그러니 인간이 삶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도 쉽게 논할 수 없는 문제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도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흥미롭게 던졌는데, 사실 이 이야기에사도 남는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신과 세상이 본래 폭력적이라면, 인간의 본성은 또 어떤 것인지. 세상의 폭력이 '신'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 폭력은 어디에서 탄생되는 것인지.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지독한 삶을 견디도록 만들어졌는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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