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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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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로 시작하는 글을 쓰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일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글입니다. 사실을 그대로 적어 보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창작의 글도 아니면서 어렴풋하게 '나'라고 해둔 인물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과 생각을 조금씩 심어놓아보곤 하는 글입니다. 전지적 시점이 아니기 때문에 이때 말하는 '나'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미스터리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나'라는 인물의 독선적인 생각들이 주제의식을 만들어 내고 이야기속에서 사건을 만들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점이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특히 혼자 놀때 그런 글을 쓰면서 놀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미나토 가나에의 글은 그런 재미가 느껴집니다.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무어라 확답을 내리진 못하겠습니다만, 일단 그녀의 글에선 '나'가 굉장히 많이 등장하고, 그런 인물들마다 마치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개성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설속의 인물들이 '나는...' 이라고 조곤조곤 뱉어내는 말에서 그 인물의 생각과 성격,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모습들까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물을 만들어내는데 정말로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또 그렇게 만들어진 인물들은 가나에가 굉장히 아끼는 '나'라고 여겨집니다. 절대로 소설속의 '나'는 갑자기 쉽게 툭 튀어나온 무엇인가가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 부탁하니까 마지못해 귀한 물건을 꺼내듯 어렵사리 꺼내어 다듬고 다듬어 공들여 만들어낸 미나토 가내 수공업의 완성품일 것입니다.



    『N을 위하여』는 N으로 추정할 수 있는 4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소설은 5장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1장은 사건의 개요와 네 인물의 진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나머지 장에서는 각각의 N이 알고 있는 선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쓴 전개를 보입니다. 이 인물들에게서 '나'라는 시점 이동이 발생하는데 이런 장치의 서술로 미스터리했던 사건의 진실이 점점 또렷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아차렸을 때 우리는 우리의 심장이 내는 작은 울림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글은 어디선가에서 본 듯하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순순히 고백하자면, 가나에의 데뷔작이었던 『고백』과 그녀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형태입니다.



   『고백』은 굉장히 빠른 전개를 보인 소설로 파격적이고 당돌했던 모습에 감탄해가며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고백』은 모래위에 잘 세워진 삼각의 피라미드처럼 안정적인 모양을 이룬 글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형태의 소설인 『N을 위하여』을 보고 있으니 가나에의 글이 보이는 단점이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가나에가 만들어 놓은 인물들 속에서 가끔씩 가나에 본인이 나와서 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이 너무 격양되어 있고 흥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열의를 갖고 성심성의껏 만들어낸 인물이기에 그런 흥분된 자기가 그대로 인물들에게서 드러났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할만한 부분이지만, 약간의 중립을 지켜가며 안정적인 글을 쓰는 것이 이런 형태의 소설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하는 꾸준함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래위에 안전하게 무언가를 세워 두려할 때 삼각형이 아니라면 우리는 괜한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별 시답잖은 쓴소리를 조금 했지만, 이렇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 소설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끼고 있다는 제 나름의 새침한 표현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가나에가 발표할 소설들의 서술적인 형식의 모양새가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저는 계속해서 그녀의 소설을 찾아 읽어볼 것 같습니다. 각 인물들이 하는 혼잣말이 많아서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뿌연 느낌이 때문에 계속해서 안경을 닦아가며 소설을 읽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런 부분이 미스터리 소설에서 씹는 느낌이 나게끔하는 글쓰기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나토 가나에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진 각 인물들의 속사정.

사실은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미스터리한 미스터리.



    끝으로 『N을 위하여』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란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는 달콤쌉싸름한 이야기입니다. 쓰르라미 우는 어느 여름날, 학교 건물 모퉁이 뒤에 숨어서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정신이 아련해질 때 그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듣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로 그 사람을 응원하는 소극적인 감정이 전해집니다. 남몰래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그래서 자신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하는 것이라는 소극적인 자기합리화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이 잘 되어서 자신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걸로 됐다며 만족하고, 또 그런 상태의 애뜻한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의 감정이 꼭 달달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나'만 알고 있는 사랑은 더욱 그럴 것입니다. 사랑은 그 어떠한 행위의 이유가 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상대의 상처를 핥아주다간 완전히 '새'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뜨거운 오븐 속에 들어있는 모이를 먹기 위해 그곳으로 기어 들어가며 '이것이 사랑입니까'라고 묻고서 사랑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 '작열하는 새'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의 존재 의의는 무의 상태에서 뭔가를 창조해 내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지도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주위 사람들은 그걸 축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더할 수 없는 불행이 아닐까.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창조해 내고 싶다고 간절히 원해 보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소설을 쓴단 말인가. 한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 사계절을 묘사할 수 있는가. 마음 깊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모르는 인간이 질투나 증오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선 나 자신을 무의 상태로 되돌리고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32쪽)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아니, 내가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일까. 그녀의 방에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레 가슴이 두근그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장기판을 펼쳤다. (94쪽)



    소설의 주인공을 작가와 동일시하며 읽는 것만큼 어리석은 해석도 없을 것이다. (125쪽)



    (…) 궁극의 사랑이란? (…) 죄의 공유. (154쪽)



    문학의 세계가 필요 없는 게 아니다. 가공의 세계에 빠져들 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어 본들 배는 불러지지 않는다. 눈앞에 책 더미가 쌓여 있다 한들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가 충분했으면 좋겠다. (216쪽)



    행위와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한 쌍인 것일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 뒤늦게 이유를 늘어놓아 봐야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동기다, 경위다, 이유다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247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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