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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어마어마한 분량을 보고 압도되었습니다. 처음 책을 보자마자 요즘에 나오는 소설들은 죄다 이렇게 길어야만 하는가를 느꼈습니다. 어찌보면 이건 유행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설들이 비슷한 형태로 소개되는 경향이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개의 힘』은 엄청난 스케일을 가진 소설입니다. 그렇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작가가 수고스런 고생을 한 그런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소설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실제로 있을 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일 것입니다. 픽션인지 팩션인지 팩터인지 아리까리합니다.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은 그 제안이 달콤하기 때문에 받아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선택지에 보기가 단 하나만 있을 뿐이고, 하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것이기에 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지 고민할 시간이 길진 않지만 충분히 주어집니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보다는 가족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비열해 보일지 모르지만, 협박은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어느 날 아침, 발 아래가 따뜻하고 축축해진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 보니, 목이 잘린 말대가리가 피를 뒤집어쓰고 튀어나올 듯한 큰 눈알을 흐릿하게 치켜뜨고서 이불 속을 적시고 있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긴 말은 필요없고 짧고 간결하게 확실한 메세지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됩니다.
돈 윈슬로의『개의 힘』은 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읽어보지 않고선 배기질 못할 끈적하고 달달한 유혹의 손길로 말이죠. 그래서 결국엔 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크게 멕시코 마약 거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분량만큼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크게 분류하자면 마약 거래상과 마약 단속반, 암살자와 매춘부, 그리고 성직자 정도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고 착한 놈과 나쁜 놈, 혹은 우리 편과 너희 편으로 나눌 수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알고보면 다 똑같이 나쁜 놈들이거든요. 결국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결국 복수의 복수의 복수를 위한 악의 도가니탕으로 빠져들어 '개의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소설은 30년 정도의 긴 시간의 이야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와 미미했던 시절을 거쳐 점점 입지를 넓혀가게 된 과정을 보여야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그 안에서 복잡한 인물들간의 관계도를 보이며 이 세계에 어둡게 뿌리박힌 역사를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가 되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긴 이야기 중에서 단 하나의 무의미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또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소설 속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흘러가는 부분들이 좋았습니다. 탁월한 장면의 전환을 보였다고 할까요. 아무튼 긴 이야기 안에서 작은 기승전결을 보이면서 큰 흐름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던 소설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개의 힘이라니.
멕시코 마약 범죄 집단의 30년 역사를 공부해보도록 하자.
소설은 섹스, 마약, 살인, 복수, 협박, 배신, 음모, 공포, 체념, 용서 등등 대부분이 어둡지만 작은 빛을 함께 보여줍니다. 가족을 크게 중요시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부분적으로 <대부>를 닮았습니다. <스카페이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같은 느와르 느낌이 물씬 풍기기도 했고, <범죄와의 전쟁>처럼 '살아있는' 이야기를 보이기도 합니다. 특정 장면들은 <킬 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같이 확실한 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멕시코 마약과 관련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한 것이라면 <트래픽>과도 닮았습니다. 그리고 <보드워크 엠파이어>처럼 성장하기 위해 손을 잡고, 또 손을 잘라버리는 등 많은 인물들과의 관계도 얼핏 닮아보입니다.
한편 『개의 힘』에 대해서 제가 주절주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모든 설명과 감상이 굉장히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책에 대한 이런 제 이야기들이야말로 개나 줘버릴 광대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까라면 까야지 뭔 말들이 그리도 많당가. 직접 읽어보면 그만일 것을. 안 그렇소, 성님. 메세지는 짧고 굵어야 제맛이랑께.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는가?"
"전 그저 제 일을 할 뿐입니다."
"나도 내 일을 할 뿐이네." (1권, 86쪽)
너희의 적이 내 적이 되는 거라면 내 적들도 너희 적이 되는 셈이다. (1권, 157쪽)
최소한 일관성은 있다. 존재하지 않는 마약에 대한 존재하지 않는 공급자 등등……. (1권, 228쪽)
큰 실수. 어마어마한 계산 착오. 미국인들은 아단이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극단적인 반응을 보였다. 멕시코시티를 내리누를 정도의 어마어마한 경제적, 정치적 압력이었다. 미국인들은 국경을 폐쇄하여 트럭 수천 대가 오도 가도 못하고 길에 서 있게 했다. (……)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죽은 사람들이 멕시코 인일 뿐이기에. (1권, 304쪽)
아무것도 없었다.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안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다. 가족, 일, 친구, 희망, 믿음, 고국에 대한 신뢰, 그 모두를 잃은 사람에게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었다. (1권, 343쪽)
남자는 현재에 살아. 지금 먹고, 지금 마시고, 지금 눕지. 남자는 다음 끼니도, 다음 술도, 다음 잠자리도 생각하지 않아. 그냥 '지금' 행복한 거지. 여자는 내일을 살아. 이 우둔한 아일랜드 놈아, 좀 알아둬, 여자는 늘 둥지를 짓고 있어. 하는 일마다 실제로 둥지를 짓기 위한 나뭇가지와 잎과 흙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둥지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야. 여자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야. 둥지는 아기를 위한 것이지. (1권, 407쪽)
악은 추진력이 있어서 일단 시작되면 멈출 수가 없었다. 물리학의 법칙이다. 잠들어 있는 몸은 계속 잠들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고 있는 몸은 계속 움직이려고 했다. (2권, 124쪽)
은을 선택하겠는가, 납을 선택하겠는가? (2권, 151쪽)
언젠가 당신에게 세상 모든 것이 정치로 보일 때가 올 것이오. 그리고 행동이 당신의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올 것이오. (2권, 333쪽)
모두가 알고 있는 관례였다. (2권, 453쪽)
아트는 마약 전쟁이 외설스런 부조리인지, 부조라한 외설 행위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두 경우 모두 피로 더럽혀진 비참한 광대극이었다. (2권,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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