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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배반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2008년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정경대를 방문하여 경제학자들에게 왜 이러한 파국이 발생하였는가를 질문하였을 때 경제학자들이 당황하여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들이 답변을 어려워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주류 경제학 내부에 깊이 스며든 추상적 형식적 성격과 그로 인한 비현실성 때문이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이러한 기존의 경제학은 유토피아 경제학이다. 갈등과 마찰, 불완전성과 비효율성이라는 현실 경제의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상적 상황에 대한 분석에만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 안 세계에서는 이기심에 경쟁을 더할 경우 그것은 곧 파라다이스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파국적인 금융위기일 수 있다는 점을 유토피아 경제학은 인정하지 않는다.
저자가 이제 새로 주의를 촉구하는 경제학은 시장이 완전하다는 믿음을 포기하고 시장 실패를 인정하며 이를 현실 이해의 열쇠로 삼으려는 현실 경제학이다. 이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저자는 경제학의 역사에서 잊혀지거나 변방에 위치한 이론들, 혹은 교과서에 실리기는 하되 그 중요성이 평가절하된 이론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피구의 외부효과, 터커의 수인의 딜레마, 애컬로프의 레몬 시장, 케인스의 불확실성 및 무리 행동, 커너먼과 트버스키의 심리학 및 이로부터 파생된 행동 및 신경 경제학,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들 이론과 개념들을 통해 저자가 확인하려는 바는 현실 세계 내에서 행동하는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 비합리성 rational irrationality 이라는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개념은 개별적 개인적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행동이지만 그가 속해있는 집단이나 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합리적이거나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는 행동을 말한다. 외부효과 개념의 의도치 않은 결과라는 함의는 이러한 개념을 묘사하기 위한 초보적 도구이다. 게임이론에서 수인의 딜레마의 해인 내쉬균형은 이러한 결과적 집단적 비합리성을 모델링하는데 도움을 준다. 케인즈의 미인대회 아이디어나 무리 행동 개념은 개인의 행동에 어떻게 타인이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카너먼 및 트버스키의 이론은 이러한 시장실패적 행동의 심리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민스키 이론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얼마나 금융위기에 취약하며 개별 금융사들의 비합리적-합리적 행동이 이러한 불안정성의 기반임을 알려준다.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면 어떤 대상의 변화를 도입하기 위해 내생적 변화가 촉발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내생적 변화의 근원은 바로 모순 contradiction 이다. 모순의 존재야말로 변화의 원동력이며 모순에 기반한 비합리적 합리성 행동이야말로 정태적인 세계만 묘사하는 경제학 교과서의 세계가 아닌 다이내믹한 현실 경제에 부합하는 개념이다. 논리학에는 <구성의 오류> the fallacy of composition 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야구장에서 한 관객이 운동장에서의 상황을 보다 잘 보기 위해 일어설 경우 그 뒤의 모든 사람들도 일어서야 한다. 한 개인만 일어설 경우 그는 이전 보다 더 잘 볼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일어날 경우 (제일 앞 줄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없게 된다. 한 개인에게 합리적 행동이 전체에게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다.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비합리적 합리성들이 우리 경제 안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점은 저자가 강조하려는 바이기도 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주류경제학은 3가지 이론적 기둥에 의해 지탱된다. 일반균형이론과 합리적 시장이론, 기대효용이론이 바로 그것들이다. 일반균형이론의 저자들은(그 가운데 한 명이 애로우이다) 자신의 이론이 현실 경제를 이해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자백한 바 있다. 민스키의 금융불안정 가설과 케인즈의 불확실성 개념은 합리적 시장이론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일깨워준다. 주류 경제학 내에서 인간 행동의 토대를 제공하는 기대효용가설은 휴리스틱스와 편견이야말로 인간 행동 이해에 더욱 결정적이라는 커너먼과 트버스키의 주장에 결정타를 먹고 있는 중이다.
비판적 개념으로 무장하고 기존 주류 이론들의 토대를 붕괴시킨 이후 저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바는 바로 2008년의 서브프라임 경제 위기이다. 앞서 장들에서 갈고 닦은 시장실패 이론들은 다름아닌 이 마지막 논의에서의 활용을 위해 준비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 사례. 2008년 위기를 포함하여 모든 버블위기에는 3가지 공통점이 있다. (1)안정이라는 환상에 기댄 정책 입안자들 (2)투기를 수월하게 만드는 금융개혁 (3)대중의 근시안적 재난 불감증 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들은 앞서 이야기한 비합리적 합리성 개념에 의해 설명 가능하다. 버블의 시기 군중과 함께 가는 것이 우세한 전략이다. 그것이 비합리적인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케인즈의 무리행동).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 사람들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하여 지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현재의 추세가 미래 추정의 토대가 된다(카너먼과 트버스키의 대표성 휴리스틱스).
두 번째 사례. 2008년 위기 직전까지 금융사들이 사용하였던 위험 추정 모델은 VaR 였다. 모형의 지지자들은 위험을 변동성으로 이해하고 미래는 최근 상황의 연장으로 가정한다. 이에 기반하여 특정 자산 포트폴리오의 위험 수준을 수량적으로 계산해낸다. 반면 케인즈에 따르면 위험이란 미래 재난의 확률로 정의되며 이 경우 미래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물론 2008년 위기는 모형 지지자들이 틀렸고 케인즈가 옳았음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나심 탈레브의 비아냥에 따르면 이 모형의 최대 유용성은 은행들이 자신들의 알리바이를 구축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파산은 예측 불능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90% 공감이 가는 말이다.
세 번째 사례. 주류경제학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인센티브 역시 그것의 올바른 이해가 요구되는 개념이다. 인센티브는 창조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 역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사의 CEO와 트레이더에게 제공되었던 인센티브 패키지의 경우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목표액의 초과달성의 경우 이윤의 일부가 보너스로 제공되지만 손실을 낸 경우에도 처벌(벌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디자인의 설계와 높은 레버리지 구조로 인해 은행은 과도한 위험을 무릎 쓸 유인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저서 말미의 플로베르 인용구가 인상적이다. “간결함은 미덕이지만 신은 섬세함 속에 있다.” 추상적 모델은 완결적이고 아름다울지 몰라도, 현실은 이와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에 속한다는 말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