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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없다 - 당신이 속고 있는 가격의 비밀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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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자들 보다도 유난히 경제학자와 관련한 조크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고소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경제학자들이 인심을 잃긴 잃었나 보다. 다음은 내가 아는 조크 한 가지. 신부와 심리학자, 경제학자가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 그런데 이들 보다 앞서 출발한 팀이 지체하는 바람에 세 사람은 라운드를 계속 돌 수 없게 되었다. 사정을 알아보니 앞서 팀은 시민들을 위해 화재를 진압하다가 실명한 영웅적인 소방관들이었다. 이를 알게 된 신부와 심리학자는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우리 경제학자는 곰곰이 생각에 빠지더니 캐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분들에게 밤에 와서 골프를 치시라고 전해주시지 않겠어요?”
이 ‘야마리’ 없어 보이는 경제학자의 말이 비록 합리적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충격을 받거나 최소한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파운드스톤의 최근 저서 <가격은 없다>는 합리성에 기반하여 인간행동을 형식적으로 모델링하는데 전념하는 경제학자들이라면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폰 노이만 식의 기대효용가설을 따른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사뮤엘슨을 따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그의 선호를 추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들, 피와 살을 가지고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진짜 인간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종 확률을 무시하고 판 돈이 큰 게임을 선택한다. 또한 선호는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일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주 역전되기도 한다. 요컨대 “선택은 상황에 의존하고 불확실한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하나의 숫자로 대변될 수 없다.”
이 책 <가격은 없다>의 전반부는 정신 물리학과 심리학의 전사들이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완고한 고집과 편견을 꺾고 설득하여 이제는 경제학의 한 분과학문으로서 자리잡은 행동경제학이 출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계속하여 앵커링(anchoring)이라는 개념에 논의를 집중하는데 이는 사전에 특정한 정보에 노출됨으로써 이후의 의사결정이 이에 영향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앵커링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저자는 마침내 카네먼과 트버스키의 프로스펙트 이론의 성립까지도 설명한다. 이 이론은 준거점, 손실회피, 그리고 확실성 효과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수익, 손실, 위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반응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신장시켰다. 이제 경제학자라 하더라도 인간 행동과 의사결정에 관한 새로운 지식에 외면할 수 없게 되었고(예를 들어 독일의 구트)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들과 공동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예를 들어 미국의 세일러, 그리고 이스라엘 출신의 애리얼리). 특히 최근 들어 경제학과 심리학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연구 주제를 공유하기 시작하였는데 최후통첩게임이야 말로 이 주제 연구에 대한 중요한 기여라고 말할 수 있다. 제안자가 수용자에게 제시하는 금액 비율을 통해 우리는 그 제안자의 이타심이나 호혜성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운드스톤의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내내 떠올랐던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정신의 탐험가들> (푸른숲, 2000)과 메리 로취의 <봉크> (파라북스, 2008) 였다. 이 세 권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미지의 영역, 학문의 변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창조적 정신들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참고할 문헌이나 선행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신생 분야(각각 행동 경제학, 심리학, 성 과학)의 토대를 닦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씩 전진해가며 분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으로 기업이나 판매자가 가격 매기기(pricing)에 대해 부리는 술수를 논의한다. 예를 들어 상품 A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싼 상품 B나 더 비싼 상품 C를 미끼로 함께 매장에 전시하여야 한다. 바로 다름 아닌 앵커의 원리이다. 이러한 전략은 명품 판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경우 앵커 역할을 수행하는 상품은 설사 판매되지 않고 전시만 되더라도 대비효과를 가져와 소비자로 하여금 그 아래 단계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다. 요컨대 트버스키의 말대로 “팔리지 않는 상품이 팔리는 상품에 영향을 준다.” 결국 가격은 위험한 조작 장치에 해당한다.
인간은 앞서 제시된 숫자에 영향을 받으며 결정을 내리고, 절대적 수준 보다 상대적 변화에 대해 더 잘 반응하며, 이익보다는 손해에 대해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한다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광고쟁이나 제품 가격을 매기는 기업가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팁일는지 모른다. 사실 벌써 기업들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의 몇 가지 결과들을 돈벌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장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경우 소비자들은 2달러를 추가로 더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마케팅은 이와 관련하여 유망한 분야가 되었고 가격 컨설팅 산업은 이제 각광받는 유아 산업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 의사결정과 행동에 관한 지식의 이러한 사용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접근은 대중 조작의 가능성을 열고 특정한 방향으로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숨겨진 설득자 (hidden persuader)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결국 매슬로우의 말처럼 망치를 가지고 있는 이는 이제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인간에 관한 새로운 지식 체계를 사적인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행동경제학을 공공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시각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좋은 제도는 좋은 인간을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미덕을 갖춘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 좋은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구조가 인간을 갱생시킨다. 메커니즘 디자인 과정에서 이제 우리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이 구축해놓은 방대한 지식체계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사기업들이 행동경제학을 어떻게 자기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준 이 책은 행동 경제학이 어떻게 공공정책에 활용될 수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보여준 선스타인과 세일러의 <넛지> (리더스북, 2009)와는 대비를 이룬다.
이 책이 갖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인지 심리학과 행동 경제학 거장들의 개인사나 성격에 관한 묘사, 혹은 그들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 들이다. 트버스키가 그처럼 매력적이고 탁월하며 흥미로운 사람이었는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알 수 없다. 트버스키와 애리얼리와 같이 탁월한 행동 경제학자들은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들 이었다. 최후통첩게임의 경우 이스라엘 국적 제안자들은 다른 나라 제안자들 보다 더 낮게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유대인은 ‘선택된 합리적 민족’이라고 비꼰다. 이 책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는 이러한 가십거리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랜 만에 유익함과 흥미로움 이라는 두 개의 미덕을 고루 갖춘 책을 만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