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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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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에 나갈 때 깜빡하고 손목시계를 차고 나가지 않으면 밖에 나가 있는 내내 종일 불안해 하는 습성이 있다. 시급을 받아 생활하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에 나에게 일 분 일 분의 시간은 결코 그냥 흘러가는 무형의 물질이 아니고, 돈으로 환산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좀 더 원시적인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없어도 평생 괜찮다. 분명히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라 서쪽으로 지기까지는 동일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다른 것일까?

 

시침, 분침, 초침으로 잘게 쪼개져 흘러가는 시간. 이런 세분화된 시간의 개념을 가지게 되기까지 인류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분명 지금 이 시대에도 아마존 원시 부족과 내가 느끼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다르듯 최초의 인류에게 흐르는 시간은 내가 인식하고 있는 시간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애덤 프랭크의 『시간 연대기』는 선사시대로부터 시작해 점차 인류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세분화되고 더 나아가 인류가 우주의 차원에 흐르고 있는 시간에 대해 논의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따라가며 그 속사정들을 하나하나 풀어 이야기해 주고 있다.

 

과거의 신관은 정말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현생 인류가 거쳐 온 계급 사회에서 신관은 보통 가장 높은 계급을 차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도 가장 높은 계급은 '브라만', 즉 신관이다. 왜 그들이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면, 그들의 직업은 사실상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천문학자였기 때문이다. 우주의 운행을 관찰하는 것은 '시간'의 개념을 나누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신의 뜻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그것은 신의 뜻을 알아채는 것과 같은 행위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인류는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관찰함으로써 겨울이 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고, 겨울이 오기 전에 식량을 비축하는 행위는 인간을 죽음에서 건질 수 있는 구원의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긴 주기의 시간을 관찰하기를 원했다. 가령 토성의 경우 이 행성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것은 30년이라는 긴 주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일은 긴 시간이 걸리고, 일종의 국책 사업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가령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별을 보고 연중 행사를 추측했다. 가령 하늘에 황소자리에 포함된 플레이아데스가 뜨면 그때 그들은 농기구의 날을 갈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신들의 뜻을 읽기 위한 것이었던 우주, 즉 밤하늘의 관찰은 곧 과학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그리스 7대 현인'으로도 알려진 탈레스는 드디어 "신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세상을 설명함으로써 혁명을 일으켰"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지적인 인간들이 지적 교류를 활발히 했던 그리스에서, 이들은 곧 탈레스의 접근 방식을 이해했으며 이 세상을 분석하면서 점을 칠 때 사용하는 언어들을 사용하지 않고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화에서 벗어나서도 한동안 이 우주의 시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한 과학의 영역에서 존재하지는 않았다. 당분간 이 영역은 철학과 논의를 같이 해 나갔는데, 이것이 철학으로부터도 완전히 독립되어 나간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점차 인간은 필요에 따라 시간을 분절하게 되었는데, 시간을 나누는 것은 꽤나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했다. 가령 태양력이 만들어질 때 로마인들은 태양의 공전 주기가 정확히 나누어떨어지지 않고 약간의 여분이 남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 여분의 시간을 분배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공 조명의 탄생이 인간의 밤을 빼앗아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되었다. 인공 조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은 해가 떨어지면 잠자리에 곧장 들었을 것인데, 현대인인 나의 감각으로는 그런 그들의 생활을 상상하는 것이 너무나 생소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서양의 중세에는 '1차 수면', '2차 수면'이라는 용어가 따로 존재했을 정도로, 자정쯤 한 번 일어났다가 다시 잠드는 것이 당연한 수면 패턴이었다고 한다. 이 은밀한 한밤의 시간 동안 그들은 무엇을 하며 견뎌냈을까. 읽는 것을 멈추고 한참 상상하기도 했다.

 

시계가 만들어지고, '공동의 시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드디어 인류는 시간을 더욱 정확하게 쪼개는 데 성공했지만 그 때문에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게 되면서 산업혁명기의 인간은 동력만 공급하면 무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기계의 효율에 인간의 하루를 오롯이 맞추어 나가야만 했다. 오전 다섯 시부터 오후 여덟 시까지 쉼없이 일해야 했던 것이 당연했던 그 시절의 인간들에 대한 연민은 어찌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만이 가엾은 것은 아닌 게, 숫자에 의해 쪼개지는 시간에 맞추어 사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인간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계를 보고 식사시간이 되었으면 밥을 먹었고, 피곤하지 않아도 시계가 잘 시간을 가리키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것은 지금 나의 삶이기도 하다. 태양과 자연의 흐름에 따라서 순리대로 살아가던 인류의 삶은 완전히 잊혀진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부터는 시간은 더욱 더 정확하게 쪼개지고, 전보에서부터 휴대 전화에 이르기까지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는 일과 생활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갔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난 5만 년 동안 시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알아 가면서 이 '우주론'이라는 것이 현실과 괴리된,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논의되어야만 하는 추상적인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우주론은 인간의 노력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우리를 흘러가 죽음에 이르게 할 시간을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역시 꾸준히, 지치지도 않고 탐구해 나갈 것이다. 이 멋진 탐험은 현생 인류인 우리가 없어지고 나서도 계속될 것이고, 이는 꽤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복닥복닥 치이는 일상 내에서의 시간 감각만이 익숙한 작은 유기체일 뿐인 내가 갑자기 멀어지고 작아져 시간 감각을 초월하는 느낌이 들면서, 좀 비장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또 우주와 시간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했는지에 대해서도 실제적으로 알게 됐는데, 지극히 기하학적으로 명료하게 행성의 운동을 표현한 프톨레마이오스의 모델은 과학적으로 틀렸을지언정 차라리 종교적인 사고관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중세인들이 가정한 '중앙에 산이 있는 천막 모형'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한편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역시 상대성 이론이 자세하게 등장하는 5장과 양자역학을 다루는 9장을 이해해나가는 일이었다. 차근차근 정독하면서 읽어나갔지만 이과적 배경 지식이 모자라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한 결과 확실히 나는 역시 이 공간과 저 공간에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모듈'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저자 역시 이것이 아직 현생 인류에게 내재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 감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나는 스스로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뉴턴의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사고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언제쯤 인류는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견된 이 새로운 '시공간'의 개념에 대해 체화하게 될 수 있을지, 그렇게 되는 인류의 미래를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것이 못내 아쉬워졌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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