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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할 권리 ㅣ 책고래숲 8
최준영 지음 / 책고래 / 2023년 9월
평점 :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적절히 '괜찮은' 곳에서 '괜찮은' 대접받으며 살아갈 방법이 있었을 텐데, 기어코 저자가 도달한 곳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잊힌 곳이다. 길거리 노숙인들, 미혼모 쉼터, 교도소… 소외되었으나 끝끝내 사람이기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외면할 수는 없었던 그들에게 다가간 세월들이었다. '낮은 곳의 인문학'이 되었다.
1/3 정도는 챕터 하나를 읽을 때마다 쉬어가야 했다. 그 얘길 했더니 슬픈 책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글쎄, 슬펐던 걸까.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를 보는 듯해서 마음이 더 아팠던가 보다. 알지만 알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쉽게 내어줄 수 있는 얄팍한 동정 하나로 이 정도면 좀 나은 사람인 양 굴었던 게 아닌가 싶어- 그것이 부끄러웠을 거다.
인문학은 16년 만에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게 해 주는 학문이었다. 인문학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하고, 표현하지 않았던 말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었다. 생각의 힘을 키우고,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해 주고, 다시 희망의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이 인문학이었다.
(p. 98)
인문학만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때로는 소설이, 때로는 만화가, 때로는 시의 한 구절이 똑같은 깨달음을 줄 수 있다. 누군가 무심히 주고 간 작은 전도지 한 장일 수도 있다. 그저 이 책의 저자와 그분 곁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인문학이었을 따름이다. 무엇이 되었건,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고 알려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이다. 그저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되는 일이다. 아, 결국- 인문학은
사람이다. 사람이다. 사람이다.
(p.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