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96쪽)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147쪽)

 

 

 

'밀란 쿤데라'라는 대가의 책을 읽는 것은 사실 조심스럽다.

게다가 이 책은 신작이라 아직 많은 해석이 나와있지 않은 편이고,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읽은 해석이 맞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며

내가 읽은 그의 전작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뿐이라

비슷한 주제를 여러 작품을 통해 변주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리도 없다.

 

얇지만, 아주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훨씬 두껍고 많은 분량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좀 더 잘 읽혔던 것 같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의 에피소드가 서로 얽혀있는 고리처럼

제 멋대로 이어져있다. 처음에는 스탈린의 일화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이거 현대 러시아에 관한 역사도 알아야 하나?'하며 겁까지 먹었던 것도 사실..

솔직히 이동진의 빨간책방 1부를 듣고 책을 읽는 맥을 잡아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그 분들과 내가 책을 읽고 같이 토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물론 당연히 그럴 만한 수준도 안되지만) 누군가와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책을 읽고 그 생각을 비슷한 시간에 머릿속에 맴돌 수 있도록 하는 경험 자체가 꽤 흥미진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졸업을 한 지 하도 오래 돼서 누군가와 같은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는 경험 자체가

너무 오래된 것도 있겠지.

 

어쨌거나,

이 책은 더이상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이 세상을 견뎌나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과거엔 '혁명'이라는 엄청나고 압도적인 깃발이 눈앞에 장엄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민주화'와 '혁명'이라는 깃발은 사라지고

(지금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그냥 접어두기로 하고)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개개인들은 그래도 뭔가 독특한 방식으로 의미가 먼지처럼 무의미하게 흩어져버린 공간 속에서 의미를 나름대로 부여해야만 할까?

민중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던 스탈린까지도 나중에는 허무해하듯,

결국 삶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나 시대정신이라는 대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거짓말'과 '농담'이다.

뭔가 무겁게 보였던 스탈린도 자고새 일화라는 (별로 재미는 없는) 거짓말을 꾸며내고,

다르델로는 라몽에게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칼리방은 자신이 파키스탄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라몽은 다르델로에게 그와 프랑크 부인의 모습이 멋진 연인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진지하지는 않게, 하지만 너무 우울해하지도 않으면서

'사과쟁이'가 되더라도 유쾌한 거짓말과 농담 정도는 간직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아름다운 '무의미한 삶의 축제'가 된다.

이것이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노작가의 삶의 연륜과 지혜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주로 에세이스트였을 것 같은 임경선 소설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 한다.

솔직한 나의 감상은...

작가의 필력은 나쁘지 않지만 '소설'로서는 많이 아쉽다.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기쁨을 느낀다는 작가의 말과 달리,

미안하지만 나는 소설의 한 부분을 인용해서 들려주고 싶다.

소설이라는 부분에 대해 좀더 고민을 하신다면,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쓰실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자체도 에세이였다면 굉장히 훌륭했을 것 같으니까.

"베일리는 방과 후 운영하는 북클럽 아이들이 제출한 글 중 안나의 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녀의 글은 물론 또래 아이들에 비해, 그리고 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법 잘 쓴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글은 한마디로 평이했고 독자적인 매력이 없었다."(15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가만가만히 위로하는 듯하다.

그래도 다시 '사랑'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 시작하라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상처를 주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기에 내가 흔적을 남기고

언젠가 그것이 흉터로 희미해질 때쯤

그 흔적도 소중하게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