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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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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삶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내 삶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가는 정념이 수면 아래에서 잠자코 있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운명적인 삶을 내가 짊어진다면 과연 나는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한 운명을 수긍하기보단 분노가 속에서 끊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용암이 분출되듯이 올라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도대체 누가 이런 가혹한 삶을 부여했을까.

 

이 책은 한 가족이 30년간 있었던 일대기를 그렸다. 부모에게 있었던 절망적인 삶이 자식에게 전이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슬픔 이전에 절망이 떠오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토요일 밤, 한 주의 고된 일상을 위로해줄 사랑의 열기로 들떠 있던 16세 소녀 로레타는 남자 친구 버니 멀린과 사랑을 나누지만, 다음 날 새벽 오빠 브룩에게 총을 맞은 버니의 시체를 곁에서 발견한다. 황망한 가운데 도움을 청한 경찰 하워드 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한 로레타는 당연한 수순인 듯 하워드와 결혼하여 웬들 일가가 된다.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잘못 꿰어진 단추는 처음부터 다시 끼어야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운명의 손짓을 어떻게 되돌릴 수가 있겠는가. 그게 로레타의 자식, 줄스와 모린에게까지 영향이 끼칠 줄이야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런 절망적인 운명이 올 줄이야.

 

로레타의 아들 줄스는 진작부터 집에서 뛰쳐나가 디트로이트 변두리를 떠돌아다닌다. 그는 자동차와 돈, 도박, 희망 없는 사랑, 무의미한 폭력에 휩싸인다. 줄스에게 총을 쏜 연인 네이딘이나 줄스 자신에게 사랑은 모든 생의 가치를 무화하는 것이었다. 줄스는 결국 마약을 하고 애인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등 타락을 하고,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기에 이르러서는 살인을 저지른다. 딸인 모린은 줄스가 가졌던 부정적 환경에 더해 가사 노동과 가정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했다.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은 매춘이었다. 이 때문에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에 모린은 거의 2년간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소설 끝부분에서 모린은 대학 강사 랜돌프와 결혼해서 디트로이트 교외의 안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토록 갈망해오던 안정된 가정을 꾸린 상태다. 하지만 줄스는 새로운 꿈을 좇아 서부로 떠나기로 하고 모린 앞에 나타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가족과 단호히 결별하겠다는 모린에게 줄스는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이러한 운명에 맞닥뜨릴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풍토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면 누구나 불을 보듯 뻔히 쳐다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가 있으면 가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가해자를 ‘기득권자’로 피해자를 ‘소수의 개인’이라고 비유해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은 자이거나 무지몽매한 자이다. 그만큼 우리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절망의 세습’이었다. 부와 권력의 세습과는 다르게 절망의 세습은 사람을 피폐하게 함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한 가정의 파탄을 초래케 했다. ‘운명’이라는 ‘절망의 세습’을 끊기 위해 우리는 몸부림을 치고 벗어나려 하지만 발버둥을 치면 더 옭아매는 그물처럼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렇다고 무방비로 상태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에 운명을 뒤엎는 묘책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 중에 하나’가 되지 않아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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