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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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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고 있는 핫 키워드는 ‘7080’이다. 최신 스마트폰은 불과 6개월을 못 넘는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는 물질문명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과거의 소중한 기억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그때 못 이룬 인연의 끝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 잊지 못하고 있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옛 추억을 통해 감성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삶은 윤택해졌지만 감성은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 그 물질문명의 발달이 사람들의 감성만큼은 채우지 못하고 있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지평’은 이런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40년 전에 있었던 묵은 기억의 단편들을 퍼즐 게임 하듯 끼어 맞추어 현재의 삶에 반영하고 있다. 기억조차 흐릿한 오래된 기억에 의지한 채 옛 사랑을 찾아 나서고 있다. 소중하고 아픈 기억들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물며 첫 사랑, 첫 만남은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 르 코즈와의 첫 만남을 회상한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지하철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우연찮게 찾아온 인연이었다. 이 첫 만남이 그들의 운명을 가로질렀다. 운명의 장난일까, 큐피트의 화살은 그들의 가슴속에 박혔다. 그들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들은 공통점이 하나씩 있었다. 그것은 각자의 삶에서 있었던 잘못된 만남이었다. 보스망스는 자기의 부모를, 마르가레트는 부아야발이라는 남자를 두려워하고 적개심을 가졌다. 이들은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보스망스는 끝내 그녀가 벗어나려 했던 부아야발까지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보모로 일하던 집에서 아이를 데려온다는 말만 남기도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는 돌아온다는 그녀의 말만 믿고 40년의 생을 살았다. 40년 후 자신의 기억을 의지한 채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참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왜 이제 와서 기억을 더듬으며 그녀를 찾아 나섰단 말인가. 과연 그녀가 돌아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의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함몰되어 시간의 힘을 빌렸던 것일까.

 

작가는 여러 곳에 다양한 인물들을 배치해 놓았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실제 가교 역할을 했다. 그 인물들을 통해서 기억의 편린들을 모으고 재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억을 탐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소설은 결말이 없는 게 특징이다. 작가는 독자들이 제각각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것이 베를린이었다. 그 곳에서 보스망스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만 남기고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궁금증이 더 커졌다. 그 여인의 속 시원한 얘기를 듣고 싶다. 후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보스망스는 과거의 기억을 헤집으면서 그들과의 만남을 재조명하고 그것을 현실에 각인시켰다. 과거의 잘못된 만남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이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시간여행.

 

지평이란 무엇인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이다. 거기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다. 과거의 추억과 아픔을 회상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꿈꾸며 현재의 삶을 극복하는 그런 삶. 시간의 경계를 허물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러면 미래와도 연결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작가가 말하려는 ‘지평’은 미래와 희망을 뜻한다. ‘7080’시절에는 미래와 희망이 있었다. 조금 더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2015년 현재, 우리에게는 과연 미래와 희망이 존재할까. 이 소설은 이런 기억의 마술을 통해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희망을 주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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