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여유 있는 자만 베푸는 게 아닙니다. 내가 받고자 하는 그것을 내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배려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배려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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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이유로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불신자보다 더 용서하지 못한다. 그리고 목회자나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용서하기 가장 힘들어한다. 칼빈의 말대로 이것이 우리를 ‘무쇠보다 굳은’ 사람으로 만든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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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축하해야 할 일을 애통하고, 애통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축하한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 애통하는가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반면에 방향이 잘못된 애통도 있다. 애통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적절한 반응이어야 한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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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못지않게 잘못된 일이 또 있다. 배우자를 만날 기대를 품고 대학에 가거나 그 일에 의지적으로 힘쓰는 듯한 사람을 많은 사람이 공공연히 경멸한다. 나는 좋은 교육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대부분 사람은 대학에서 받는 학위를 평생 써먹을 일이 없다. 그렇다고 학위와 학습 경험이 귀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연히 귀중하다. 하지만 전공보다 배우자가 인생의 만족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4년 동안 대학에서 평생의 배필을 찾으려 하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것이 대학의 주목표는 아닐지라도 최고의 목표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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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는 나도 2%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모자람은 어쩌면 세상의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일지 모릅니다. 애써 숨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자녀가 되었다면, 나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사람들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놀라운 소통이 일어나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돕고자 나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족함을 포장하여 그럴듯하게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모습 그대로가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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