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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 제10판
루이스 자네티 지음, 박만준 외 옮김 / K-Books(경문사,케이북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크악~ 얼마전에 중고서점에서 구판을 겨우 구했는데, 개정판이 나오다니..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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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 2010-05-14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그가 살았던 동네 사람들이 그를 '깡귀엠'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깡귀엠'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 로쟈 2010-05-12 23:43: 그래도 그게 왜 '깡기엠'이 아니라 '깡귀엠'이 되는 건지는 좀 의문인데요... >>

우연히 위와 같은 님의 댓글을 발견하여 몇 자 적습니다. 로쟈의 포스트에는 외부인이 글을 남길 수가 없어서 편법을 동원하니 옮겨다 주세요.

촌사람들이 철자에 상관없이 그렇게 '깡귀엠'으로 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름의 철자가 'Canguilhem'이니 '깡길(귈)렘'으로 발음하는 게 맞다고 보여집니다. 이름의 발음기호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옆집 프랑스 사람에게 여쭤보니 '깡길(귈)렘'이라고 분명히 'L'을 발음 하는군요. 만약에 철자가 'canguillem'이라면 '깡귀옘'으로 발음이 되겠는데(마치 'gentille(착한)'의 발음이 '장틸러'가 아니라 '쟝띠여'인 것처럼), 혹시 촌사람들이 철자 중의 묵음 'H'를 'L'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위의 로쟈의 의견에 대해서: '~guil~'에 숨은 'U'는 발음을 '질(gil)'이 아닌 '길(guil)'로 하기 위한 도구적 기호에 불과하므로, 로쟈의 지적처럼 '귈'이 아니라 '길(깡길렘)'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맞겠지만, 눈에 보이는 'U'에 속아서(?) '귈(깡귈렘)'로 흔히 발음하는 듯 합니다 .
 
천연론 소명출판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114
엄복 지음, 양일모 외 옮김 / 소명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1. 들어가며

1893년 5월 19일, 토머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는 옥스퍼드의 셸던 극장에서 ‘로마니스 강연’을 시작했다. 당시 청중들은 이 강연이 두 가지 서로 다른 모순된 주장을 담고 있음을 지적했다. 강연의 주제는 인간의 윤리란 진화에 맞서 싸우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는데, 동시에 강연 곳곳에서 그는 인간의 윤리가 진화의 산물이며 인간은 진화가 이끄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강연 직후, 헉슬리는 자신의 글들을 모은 전집 출판을 기획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강연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평자들의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강연 원고 앞에 긴 서문(Prolegomena)을 붙였다. 이 원고는 당시 영국에 유학해 공부 중이던 중국인 엄복(嚴復, 옌푸, 1854-1921)을 감동시켰고, 그는 이 강연 원고를 번역함으로써 당시 열강의 착취로 신음하던 중국의 미래를 고민하였다. 이 책, 󰡔천연론󰡕(天演論)은 곧 중국 문학의 고전이 된다.


2. 󰡔천연론󰡕(天演論) 발간의 시대적 배경

1894년부터 1895년까지 계속된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완패한 이후 중국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중체서용론(中體西用論)을 내세워 중국의 근대적 변화를 꾀했던 양무운동(洋務運動)의 한계가 뚜렷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엄복 역시 중국의 전통 사상과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강유위(康有爲)와 양계초(梁啓超) 등은 메이지 일본의 서구 사회ㆍ정치 제도를 수용하자는 변법(變法) 운동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엄복은 그들처럼 정치 운동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는 저술과 번역을 통해 시대적인 고민을 해결해 보고자 했다. 그는 중국의 위기가 중국이 서양에 비해 경제적ㆍ군사적 힘이나 기술이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사회를 구성하고 질서를 형성하는 기본 원리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상과 가치의 문제였다. 즉, 서학(西學)을 바탕에 두고 사회진화론과 서구 자유주의를 통해 개량(改良)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엄복의 뜻이었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양 현자들의 사상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엄복이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를 번역하여 󰡔천연론󰡕을 발간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천연론󰡕은 엄복이 번역한 첫 작품(1898년 발간)으로서, 이 책은 변법운동의 실패로 무기력해진 당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다시금 혁명의 희망을 되살려주었다. 이 책을 통해서 왜 중국에는 개혁이 필요하고 또 왜 서학을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연론󰡕은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이 책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식이 가장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첫째, 이 책이 동서양 학문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한 면모를 세밀히 추적해보는 것이다. 엄복은 중국 전통사상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서양의 학문에도 밝았다. 따라서 그는 서학의 새로운 개념들을 소개할 때 전통사상의 기초를 두고 설명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서학을 토대로 기존 전통사상을 비판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가령, ‘진화’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유우석과 유종원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대목이나 선과 악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연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역전󰡕이나 󰡔노자󰡕를 인용하는 부분, 헤라클리투스의 이론을 장자의 설과 비교하는 부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논하면서 주자의 이(理)와 기(氣)를 원용하는 부분 등에서 그러한 구체적인 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동서양 학문의 상호 교류 양상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허나 그 작업은 동서양 학문적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밑바탕에 있어야만 할 것이며, 따라서 이 글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그 대신 이 글은 또 다른 접근 방식을 따라 진행하도록 하겠다. 즉, 엄복이 번역한 책, 󰡔진화와 윤리󰡕의 저자인 토마스 헉슬리의 사상과 엄복 사상 형성에 중요한 이론적 준거로 작용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상, 이 두 학자의 사상을 비교ㆍ대조하면서, 그 사이에서 엄복이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 가늠해보는 작업이다.


3. 엄복(嚴復)의 생애

사상이란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사회적 배경이나 정치적 신념 등에 영향을 받아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선 엄복의 생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엄복은 1854년 1월 8일, 복건성(福建省)의 후관현(候官懸) 양기향(陽崎鄕)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엄복이 태어난 마을은 나무가 우거진 높은 산들이 있는 곳이었다. 아버지 엄진선은 엄복이 과거를 통해 관리에 오를 수 있도록 그의 교육에 힘을 썼다. 그러나 1866년 아버지의 사망과 더불어 관직에 이르기 위한 교육은 중단되었고, 어머니는 엄복을 ‘양무’(洋務: 서양 기술) 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곳에는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조선학교와 영어 수업이 이루어지는 항해학교가 있었는데, 그는 후자를 선택했고 이 때 습득한 영어를 통해서 서양사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엄복은 영어, 산수, 기하학, 대수학, 해석기하학, 삼각법, 물리학, 역학, 화학, 지질학, 천문학, 항해술 등을 공부했다. 1877년 엄복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영국으로 파견되었는데, 이때부터 그는 당시 모든 점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보였던 영국이 부강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1879년 중국으로 돌아온 엄복은 좌절을 겪게 된다. 그는 천진(天津)에 신설된 북양(北洋) 해군사관학교(수사학당)의 총교습(總敎習: 일종의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끝내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위치에만 머물렀다. 그는 전통적인 관료제에 편입하려고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급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마침내 엄복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서 중국의 지도적인 사상평론가 중 한사람이 된다(󰡔천연론󰡕은 이 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특히 그는 서양 사상을 중국에 전달하는 서학의 대사(大師)로 통했다. 엄복의 사상은 당시 중국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궁극적으로 중국사회의 전통적 질서를 뒤엎으려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사유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엄복 자신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교육에 의한 변화, 그리고 강력한 군주제적 질서 속에서 개명한 군주에 의한 개혁만을 꿈꾸었다. 이렇듯 엄복은 자신이 야기한 중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부터 소외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 국부라는 목적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엄복의 논리는 신해혁명(辛亥革命), 5ㆍ4 운동 등을 거치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려는 움직임과 충돌하였다. 특히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서양마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후 엄복은 방임적인 의미의 개인 자유뿐만 아니라 수단적인 의미의 자유마저도 부정하기에 이른다.


4. 󰡔천연론󰡕의 구성

엄복은 번역가와 주석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엄복이 번역한 책의 대부분은 그의 주석이 함께 달려있다. 󰡔천연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크게 상권인 「도언」과 하권인 「본론」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는 「서문」과 「로마니스 강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천연론󰡕의 「도언」과 「본론」 각각은 여러 개의 소제목으로 정리되어 있다. 「도언」은 그 아래 18개의 소제목으로, 「본론」은 17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는 구성 상 「서문」이 앞에 배치되어 있지만, 사실 이 「서문」은 로마니스 강연이 끝난 후에 덧붙여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로마니스 강연」(본론) 내용을 먼저 다루고 이어 「서문」(도언) 내용을 다루는 순서를 택하겠다.

(1) 본론의 내용
본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겠다.
진화는 세상 모든 것에서 작용하는 것이며, 만물은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 한다.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알에서 홀연히 뿌리와 줄기, 꽃잎과 열매가 생겨나는 과정은 자연의 섬세한 손길이 작용하는 심오한 과정이다. 처음에 숨어있는 변화의 기미는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고, 나중에 점차 복잡하고 다양하게 되어 변화의 극치를 이룬 것은 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능성과 현실성, 이 두 가지를 합하여 진화라고 말한다. 엄복은 여기에 유기물의 몸 안에는 죽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이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때 죽지 않는 것은 정령이나 혼백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어미를 떠나 자식의 몸으로 전수되어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금수의 상태로 출현했던 인류는 사회를 구성하면서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과거 생존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던 특성들(남을 해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 등)은 여전히 남아 지속되고 있다. 헉슬리는 진화의 단계가 최고에 이르면 사회의 교화(civilization) 작용으로 인해 이러한 특성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은 서로 구분될 수 있다는 헉슬리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헉슬리는 종교에 대해 고찰한다. 고통과 아픔은 인간 삶에서 필연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아름다웠던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생에 연연해하는데, 헉슬리는 이것을 종교의 원인이라고 본다. 헉슬리는 종교 교의의 유래를 알기 위한 방법으로 형벌과 포상의 공정성을 언급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주고 공을 세우면 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헉슬리는 선한 자가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은 아니며, 또 악한 자가 반드시 화를 입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종교를 비판한다. 즉, 자연은 인자하지도 흉악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만물의 조화는 이미 두 측면을 초월해 있다. 따라서 종교에서처럼 우리가 편협하게 선과 악에 집착하여 공과 죄를 판단하는 것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다.
다음으로 헉슬리는 구체적으로 불교의 인과와 윤회설을 살펴본다. 불교의 업(業, 카르마 Karma)은 사람이 열반에 들어가 번뇌를 없애야만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업이라는 씨앗은 생사의 수레바퀴를 돌아 반드시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다시 씨앗을 낳는다. 이 때 헉슬리가 문제 삼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훈수나 수행의 성패에 따라 그 업을 다스릴 수 있다는 주장이 미심쩍다는 것이다. 즉, 후천적 요인들이 유전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불교의 가르침이 브라만교의 가르침에 비해, 특히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엄복은 이 부부분에서 ‘열반’이라는 상태의 불가사의함에 주목하며 그것의 오묘함을 길게 설명한다.
이어, 헉슬리는 인도를 떠나 서쪽으로 눈을 돌려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이탈리아 지역을 살펴본다. 헉슬리는 진화론의 시원을 에페소스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엄복의 󰡔천연론󰡕에서는 ‘헤라클리투스’로 명명됨)로 본다. 이 사상은 데모크리토스와 스토아학파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스토아학파는 여기에 초험적 유신론의 내용을 덧붙여 헤라클레이토스의 자연(끊임없이 변하면서 지속되는 자연, 만들어졌다가 다시 파괴되는 방식으로 순환하는 자연)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자연상을 만들어냈다. 즉, 스토아학파는 이상적인 신의 속성들로 치장된 모습을 지닌 자연을 상상했다. 그 신은 무한한 힘과 초험적인 지혜를 갖추었고 지극히 선한 존재였다. 그러나 헉슬리는 이러한 모습의 자연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스토아학파는 우주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악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헉슬리는 한 가지 부분에서 스토아 학파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스토아학파는 ‘자연’ 혹은 ‘본성’으로 번역될 수 있는 ‘nature’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였고, 그 중 최상의 것으로서 ‘순수이성’을 구분해내었다. 인간은 이 순수이성을 갖추면서 비로소 문명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엄복은 이(理)와 기(氣)를 구분하면서 이 부분을 보충 설명하고 있다. 즉, 전자는 인간 사회에 속하는 것으로, 후자는 자연의 운행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이(理) 또한 하늘을 떠나서는 말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자연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행위는 자연의 운행과 합치될 수 있는 것일까?
이어지는 책의 나머지 부분은 사회적 진보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적 진보란 자연을 억누르고 이를 윤리로 대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헉슬리는 생존경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우주적 진화’가 존재하지만 인간사회는 우주적 투쟁과는 다른 윤리적 과정이 고유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들과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유명한 헉슬리의 명언을 직접 확인해보자.

사회의 윤리적 진보는 우주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주 과정으로부터 도피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더구나 아닙니다. 윤리적 진보란 우주 과정과 싸워가면서 얻어내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엄복의 번역은 아래와 같다.

아아! 오늘날 정치에서 성과를 거두려 한다면 반드시 자연과 싸워 이겨야 한다. 자연의 운행을 추종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자연의 운행을 피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한 일이다. 일반적으로 자연과 싸워 이긴다는 말은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고 자연의 본성을 거슬러 재앙을 받고 불행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의 본성을 다 파악하여 해로움을 이로움으로 바꾸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2) 도언의 내용
그러나 헉슬리는 여전히 윤리라는 것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 헉슬리의 책 󰡔진화와 윤리󰡕를 직접 꼼꼼히 읽어보면 헉슬리가 윤리를 여전히 진화의 결과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특히 󰡔진화와 윤리󰡕의 「서문」을 읽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헉슬리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회가 자연의 일부이며 또 자연의 산물임을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헉슬리는 동식물의 성장과정 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 모습까지도 모두 진화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던 학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1890년대 들어와 󰡔진화와 윤리󰡕에서 그는 ‘진화'에 대항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로서 ‘윤리'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화와 윤리󰡕의 「서문」은 「로마니스 강연」에서 드러난 헉슬리의 변화 앞에서 다소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인 청중들을 위해 쓴 것이며, 이 글에서 「본론」(로마니스 강연)을 「도언」(서문)보다 앞서 다룬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도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헉슬리는 이 지구가 수억만 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가 되었지만 그 변화 가운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것은 곧 ‘진화’이다. 진화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는데,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이 그것이다. 이 법칙은 만물에 모두 적용되지만, 생물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진화는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미미한 것에서 분명한 것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갖으며, 변이, 선택, 경쟁이라는 세 가지 원리를 토대로 한다.
이어서 헉슬리는 이러한 자연의 활동과 구분되는 ‘사람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의 사업은 자연의 한계를 구제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운행은 생존경쟁을 일삼지만, 인위적 관리는 만물이 경쟁하지 않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 정원사가 필요하듯이, 한 나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성인이 있어 훌륭한 정치를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냉혹한 자연계의 생존경쟁을 떠나 인간의 노력이 존중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자연의 소산이 아닌 것이 없다. ‘사람의 힘’ 또한 그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나 홀로 고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에덴동산에도 뱀이 존재하듯, 위와 같은 이상적인 인간 세계는 곧 자연의 힘에 의해서 파괴된다. 자연계의 생존경쟁은 이 세상에서 결코 중단될 수 없는 일이다. 헉슬리는 그 대표적인 원인으로 인구의 증가를 꼽는다. 인구가 증가하면 그 나라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게 되고 다시금 생존경쟁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원사가 결함이 있는 식물을 뽑아버리듯이 어떤 강력한 관리자를 두어 병들고 쇠약한 사람들을 가려내는 조취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관리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성격과 능력을 정확하게 골라낼 수 있을 만큼 예리하지는 못하다. ‘훌륭한’ 자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호할 만큼 인간의 사회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회의 유지를 파괴하게 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사회나 집단을 구성하는 유기체는 인간뿐이 아니다. 그 예로 헉슬리는 꿀벌 사회의 존재를 언급한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의 안위를 위해 행동하려는 경향을 타고났다는 사실에서 꿀벌과 다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이러한 특징은 사회의 안정을 파괴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헉슬리는 자신의 고찰을 진전시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사회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 내부의 경쟁을 가라앉혀 인간의 이기적인 경향을 제어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제어하는 경향이 지나칠 경우, 이 역시 사회의 안전을 파괴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앞세우려는 (이기적인) 경향은 자연 상태에 대항하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헉슬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듯 인간과 자연의 영원한 투쟁이며 긴장의 연속이다. 결국 인간은 인간 사회 내부에서나 자연에 대해서나 인간 자신의 목적과는 무관한 우주의 힘에 대항하여 끊임없이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5. 헉슬리에 대한 엄복의 태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윤리’가 차지하는 지위란 이처럼 모호하다. 인간의 양심과 도덕 감성을 통해 이룩한 인간 문명은 생존경쟁이 작동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다시금 투쟁을 재개한다. 게다가, 윤리는 근본적으로 자연의 생존경쟁이 배출한 진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헉슬리에 대한 엄복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여기서 엄복은 대단히 미묘한 태도를 취한다. 당시 국제적 정세에 비춰봤을 때 엄복의 입장은 헉슬리의 이론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헉슬리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태도는 언뜻 이중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선, 엄복은 헉슬리의 ‘변심’에 주목하였다. 즉, 엄복은 󰡔진화와 윤리󰡕를 기점으로 헉슬리의 입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헉슬리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요지는 스펜서의 방임주의에 따르는 폐단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논의 중에는 중국의 옛 사람의 논의와 매우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며, 자강을 통해 종족을 보족하는 일에 대해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간 문명 고유의 노력을 인정하려는 (헉슬리의) 시도는 당시 세계적 정세로 미루어볼 때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동양의 국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인 듯하다. 사실, 서구의 사회진화론은 본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주요개념으로 하며 아시아 침략의 정당화논리로 사용된 이론이었다. 약자의 소멸을 자연적ㆍ당위적 현상으로 이해하고, 강자의 승리와 생존을 긍정하며 이를 역사의 진보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진화론이 아시아에 수용되는 과정에서는 그 기능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즉, 사회진화론은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고 각종 근대적 질서를 수용함으로써 내적 진화(진보)를 이루어 서구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우려는 노력의 이론적 기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 역전 현상의 이론적 배후에는 생존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의 질서에 대항하는 인간적인 노력, 즉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노력에 대한 강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엄복의 제스처는 헉슬리와는 다소 달랐다. 그는 국가의 부강이라는 당면 과제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했지만,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헉슬리와 같이 ‘인위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오히려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엄복의 모습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이며, 한 눈에 쉽게 파악이 되지 않을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띤다. 여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이론을 토대로 헉슬리의 입장을 비판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엄복은 논의의 기본이 되는 개념인 ‘진화’의 의미를 이해할 때조차 헉슬리의 설명방식이 아닌 스펜서의 그것을 따랐다. 헉슬리와 스펜서는 이 ‘진화’ 개념에 대해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진화’에 대한 헉슬리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통속적인 의미의 진화는 점진적인 발달, 즉 비교적 균일한 상태로부터 비교적 복잡한 상태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뜻한다. 하지만 진화는 좀 더 넓은 뜻으로 거꾸로 일어나는 형태 변화, 즉 비교적 복잡한 상태로부터 비교적 단순한 상태로 진행되는 변화 역시 포함한다.

그러나 엄복이 사용한 ‘진화’ 개념은 스펜서의 그것이다. 엄복은 헉슬리의 위와 같은 언급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이 변화하는 추세는 모두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미미한 것에서 분명한 것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헉슬리의 언급 중 뒷부분, 즉 ‘진화’가 비교적 복잡한 상태로부터 비교적 단순한 상태로 진행되는 변화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이는 엄복이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생략의 근거는 바로 스펜서의 이론에 대한 그의 열광이다.


6. 스펜서에 대한 열광

스펜서의 이론은 생물학(진화론)을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방식을 따르는데, 그는 국가나 사회 또한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사회 유기체는 다윈적 환경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고 투쟁하는 여러 유기체 중 하나이며, 미분화된 구조에서 분화되고 응집력있는 구조로 발전한다. 그리고 사회적 집합체의 자질은 그 단위인 개개인의 자질에 달려있다. 이러한 스펜서의 설명은 엄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국이라는 유기체의 한 세포로서 중국인에게 부과된 의무는 그 사회 유기체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헌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공정신에 대한 예찬과 같은 엄복의 주장은 사실상 스펜서의 학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스펜서의 사상 체계 내에서 국민국가는 아무런 역할도 맡지 않기 때문이다. 스펜서 이론의 핵심은 궁극적으로 개인이 최종 수혜자가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의 관심은 국가의 부강이 아니라 개체의 성장과 진화에 있었다. 좋은 사회란 개인의 행복이 최고의 유일한 목표가 되고 개인이 외적 억압을 당하지 않는 사회이다. 스펜서의 기본적 견해는 사회 진화의 장대하고 비인격적인 과정에 ‘외부’에서 어설프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복은 이러한 스펜서의 개인주의적 기본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국가의 부강이라는 목표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엄복이 보기에, 서양의 부강을 설명해주는 것은 서양에서는 진화의 과정이 방해받지 않고 흘러갔다는 점이며, 중국이 빈곤에 빠진 원인은 그 과정이 저지되었다는 점이었다. 인민의 지적, 육체적, 도덕적 능력은 자유로운 제도와 경제적 영역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생존투쟁을 벌일 수 있는 환경에서 번성할 수 있다. 결국,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이유는 국가가 자유의 가치를 철저히 믿고 따랐기 때문이다. 엄복은 학문적 진리와 정치적 정의의 실현을 동서양을 막론하고 추구해야할 보편적인 이념으로 보았는데, 서양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 반해 중국은 그에 실패했다. 엄복에 따르면, 그 실패의 이유는 ‘자유’의 유무에 있었다. 즉, 서양은 자유를 추구해온 반면 중국은 자유를 억압해 왔기 때문에 결국 중국이 그 보편적 이념을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이미 ‘자유’라는 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의 ‘강제없는 상태’를 뜻하는 소극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엄복의 관점에서, 중국사회가 수용해야 할 ‘자유’란 천부적으로 하늘이 부여한 적극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엄복이 국가의 부강을 외치면서도 지속적으로 자유를 강조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전술했듯, 엄복이 서양 근대의 자유를 적극 수용하여 정치와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의 부강이었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서구열강과 맞닥뜨리면서 무기력하게 패배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중국의 부강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실제로 󰡔천연론󰡕에는 중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엄복의 직접적인 언급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엄복의 ‘자유’ 개념은 이러한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양의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자유를 항상 목적 그 자체로 보았던 것에 비해 엄복은 자유를 국가의 목적에 복무하는 도구로 여겼다. 즉, 엄복에게는 중국의 부강이 體이고 서학이나 자유는 用일 뿐이었다. 그의 자유는 국가의 부강이라는 최종적인 목표를 위해서 기꺼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이었다. 즉, 엄복은 국부에 배치되는 개인의 자유는 반대하였다.

엄복은 스펜서가 개인주의를 존중한 측면을 무시하고 국가주의로 해석했으며, 스펜서가 비판적으로 조망한 영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엄복으로서는 당시 중국의 부강을 위해서 진화이론의 모든 가능성을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엄복은 헉슬리의 자유 개념으로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부강에 목표를 두는 엄복의 입장에서라면 개인에 초점을 두는 스펜서의 이론보다는 자연 법칙에 대항하는 인간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헉슬리의 이론이 더욱 환영할 만한 것일 텐데도, 여전히 엄복은 헉슬리와 분명하게 거리를 둔다. 대체 엄복은 왜 스펜서의 이론에 무게를 실어준 것일까.
엄복은 스펜서의 논리가 헉슬리의 그것보다 더욱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스펜서의 사회학 이론이 생물학의 원리로부터 추론된 것이기 때문에 견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복의 해석에 따르면, 스펜서의 개인주의는 다음과 같은 ‘정의’ 개념을 토대로 한다. 즉, 정의란 ‘각기 자유를 누리되, 타인의 자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다. 엄복은 이 원리를 사회를 구성하는 최고의 원리로 격상시켜 평가하며, 이러한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경제학’을 가장 중요한 학문으로서 바라보았다. 이 ‘경제학’은 아래와 같은 원리를 포괄한다. “최대 이익이 존재하는 곳에는 반드시 쌍방이 모두 이익을 얻는다. 타인이 손해를 보고 자신은 이익을 얻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자신은 손해를 보고 타인은 이익을 얻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엄복은 이러한 원리를 갖는 자연의 ‘진화’를 따르면 인간사회가 반드시 ‘선(善)’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회가 궁극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언급되었던 ‘인구 증가’ 문제에 대해서도 엄복은, 스펜서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그리고 헉슬리에 반대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인구가 날로 늘어나 식량부족을 초래하는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술과 지식 및 자치 능력을 진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또 사회가 진보하면 뇌의 크기가 커지고 이를 토대로 복잡한 감정과 사고가 가능해지며 사회를 다스리는 능력 또한 정밀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능을 쓰는 사람은 성년이 되어 남녀가 결합을 하게 되는 때가 이르기까지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리며 자손 양육에 소홀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사회의 진보와 출산율은 항상 반비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엄복은 인구과잉은 인간 사회의 궁극적인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낙관적으로 보았다.

스펜서의 주장은 이상과 같다. 그의 주장이 발표된 후로 진화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은 열에 여덟아홉이 그를 지지하였다. … 대체로 열등한 종은 자손을 많이 낳지만 그 자손이 단명하며, 탁월한 종은 자손을 적게 낳지만 그 자손이 장수하는 법이다. 이는 진화의 일반법칙으로 초목과 벌레, 물고기로부터 인류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살펴볼 수 있는 사실이다. 스펜서의 학설이 어찌 타당하지 않겠는가.

스펜서에 대한 엄복의 신념은 이처럼 확고한 것이었다. 사실, 각 「도언」과 「본론」 내용 뒤에 첨가되어 있는 「엄복의 해설」은 스펜서의 이론을 토대로 헉슬리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결국 엄복은 헉슬리의 책을 번역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스펜서의 이론을 전파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7. 맺으며

지금까지 엄복의 이론적 지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엄복이 번역한 책인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의 기본입장은 생존경쟁이라는 자연 법칙에 대항하는 인간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헉슬리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자연법칙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함께 언급했다. 당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인위적인 ‘인간의 힘’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세계적 정세 속에서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었던 중국의 지식인 엄복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엄복의 이론을 헉슬리의 그것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엄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슬리의 이론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비판의 근거는 엄복이 자신의 중요한 사상적 거점으로 삼았던 스펜서의 이론이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왜 지금 한 세기 전에 살았던 한 학자의 이야기를 꺼내들어야 하는 것일까. 필자는 엄복의 󰡔천연론󰡕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 어디를 가더라도 엄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신문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광고지들을 볼 때나 등록비 인상 문제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읽을 때, 심지어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가서 물건 가격을 비교할 때, 필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엄복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의 거의 대부분은 엄복의 관점을 통해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분명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분위기는 한 세기 전 제국주의 열강의 열띤 확장 경쟁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의 저서 󰡔역사와 반복󰡕에서 역사가 일정한 간격(60년 혹은 120년)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는 테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1870년 이후의 이데올로기였던 우승열패ㆍ적자생존의 ‘사회다윈주의’적 흐름을 반복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 세기 전 출판된 엄복의 책을 지금 다시금 되살펴 보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엄복이 가졌던 고민거리들은 곧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문제이다. 그가 자신의 펜으로써 맞서고자 했던 그 격변의 현장 속에서 지금 우리들 또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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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와 여우 -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하여
이사야 벌린 지음, 강주헌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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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에 대한 분석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구분 범주로서의 '여우'와 '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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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어린아이, 인간 - 인간은 어떻게 유아화되었는가
클라이브 브롬홀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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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갖는 톡특함을 '아기같음'이라는 하나의 실을 통해서 꿰어내는 그 실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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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01 - 세계명작베스트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김순진 옮김 / 일송포켓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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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체호프, 체호프... 하는지 알겠더라. 인물과 배경 묘사는 압권~ 특히 '농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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