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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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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부담스러운 추천사들을 읽으면서 실망할 것을 각오한 채로 책을 읽었다. 느리게 읽을 이유도, 눈물을 흘릴 이유도 찾지 못한 건, 내 감정이 메말라 있기 때문일까? 내가 이미 더한 죽음을 겪었기 때문일까? 작년 회사 같은 본부 사람들과 관련된 문상이 많았다. 동생, 아버지, 장인. 장례식장에서조차 씩씩한 젊은 여직원도 있었고, 한두 달 지난 후에 일상적인 일처럼 얘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힘이 들었었다. 루시라는 이름의 미망인이 결국 말기암환자인 남편이 죽고 나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잘 살아갈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삶을 이와 다르게 설명하는 건 줄무늬 없는 호랑이를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 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타협하는 부분이다. 그게 곧 죽을 남자의 아이를 낳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다음은 기념이 될 것이다.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미치는 미약한 영향력이다.

 

 직접 체험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문학 작품이나 학술적인 연구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내 경험을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역시 비슷한 형태의 저술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풍부한 경험을 하고 충분히 사색한 뒤 글을 쓰는 것 말이다. 내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글들이 필요했다.

 

 나는 문득 내가 슬픔의 5단계(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를 이미 다 겪었지만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 겪은 듯 한데, 아직도 그 다섯 가지를 복합적으로, 간헐적으로 겪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야타(너 자신을 다스려라(산스크리트어)): 배는
 돛과 노를 능숙하게 다루는 손에
 즐겁게 응했다.
 잔잔한 바다에서 능숙한 손에
 초대를 받았다면 그대 마음 또한
 즐겁게 응했으리라

 

 당신은 제게 두 가지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뜻하셨다면
 만족하실 그런 사랑의 유산을.

 당신은 바다처럼 광대한
 고통을 남기셨습니다.
 영원과 시간 사이에,
 당신의 의식과 나 사이에.

 -에밀리 디킨슨

 

 12년 전 뉴헤이븐에서 서로 사랑에 빠졌을 때가 기억났다. 우리의 몸이 어찌나 서로에게 잘 들어맞는지 깜짝 놀랐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둘이서 몸을 휘감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하게 잤다. 나는 이제 폴이 내 품에서 예전처럼 편안하게 위로 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책 한 권이 남았으니 그의 인생은 그 만큼의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살펴 본 죽음과,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한 것이므로. 내가 혹시나 해서 기대했던 그 무엇은 결국 없었다. 나는 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걸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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