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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 / 2009년 5월
평점 :
원제는 영어로 "Castellio against Calvin or a conscience against violence"가 되고, 한글로는 "칼뱅에 대항한 카스텔리오 혹은 폭력에 대한한 양심" 으로 번역된다. 한글 제목은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책의 전체를 설명하는데는 무리가 있고, 저자가 붙인 제목을 굳이 바꾸어야 할 만큼 판매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지도 않다.
이제는 스스로도 기독교인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 사이 어느 지점엔가 놓여 있다. 다른 동네로 이사를 오고, 적당한 교회를 물색해보려 몇 군데 교회를 들려 보았는데, 아무리 양보해도 다닐 만한 교회를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교회에 앉아 있으면, 예배의 형식과 말과 노래들에 담긴 인간화를 견디기가 어렵다. 인간이 아니고, 인간이 될 수 없고, 인간이 되어서도 안 되는 신을 사람들 마음대로 인간화해버린 모든 것들이 너무 유치하기 때문이다. 신은, 만약 그가 이 모든 걸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살피고,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는 존재라면, 이런 걸 견딜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신이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그걸 견딜 수 있어야 신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인류가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피비린내나는 그 모든 사건들을 목도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신이라면, 그 존재는 냉혈한 이거나 피에 굶주린 괴물, 또는 그 두 가지 속성을 다 가진 존재이어야 할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신은 인간의 역사를 방임한 무책임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 정도 얘기해도, 평범한 종교의 체계 속에서조차, 신의 설 자리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두 가지 측면. 종교의 목적이 인간의 생활, 선한 인생을 살아기기 위한 것이라면, 신에 대한 지식이나 깨달음은 필수요소가 이니다. 종교의 목적이 신의 존재와 속성을 깨닫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불가능하다.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 인간이 신을 완벽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유지해 온 종교적 행위의 목적은 뻔한 것이다. 그 두가지 목적이 아닌 모든 것이다. 신과는 상관없는 모든 것, 인간적인 목적을 위한 것들이다.
논란 속에 베스트셀러가 된 '젤롯'의 저자 레자 아슬란은 이렇게 말했다. "열렬한 기독교인이면서 예수를 전혀 추종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열렬한 예수 추종자이면서 기독교인은 아닐 수도 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오순절파 교회를 다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고,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고, 그가 전도한 그의 모친은 여전히 기독교인인데, 그는 지금 다시 무슬림이 되어 있다. 얼마 후에 그는 또 다른 종교인이 되기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기 원하는 것은 신이 아닌 자신의 중요성, 그리고 그걸 깨달은 각 개인들의 중요성인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 특히 정경에 들지 못해 한국에서는 거론도 잘 되지 않는 도마복음서에 의하면, 역시 그 한 사람의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카스텔리오나 칼뱅이나, 그 시대의 일반적인 평민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도 그 시대에는 지식인이 되고, 지도자가 되고, 권력을 가질 수도 있었다. 츠바이크는 그보다 훨씬 덜한 노력으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보수+꼴통 기독교 단체들이 탄핵을 반대했고, 지금도 강남에서는 빨갱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재판관의 배우자가 빨갱이란다. 라고 내가 아는 한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한 언론에서 그 재판관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소개되었다.
나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내가 만약 다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누군가 내 목에 칼이나 총을 들이대고 신을 부정하면 살려주겠다. 또는 특정한 다른 신을 섬기겠다고 맹세하면 살려주겠다고 협박한다. 옆에는 그걸 거부하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과, 맹세하고 살아서 걸어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내가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는 건 신에 대한 신앙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자존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신이라면 - 이 경우의 신은 인간화에 갇히지 않은 진정한 신, 인간이 알 수 없는 진짜 신을 말한다. - 이런 걸 가지고 누구는 천국으로 들이고, 누구는 지옥불에 던지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톨릭의 성인들은 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성인인 것이다. 마더 테레사를 성인으로 만드려고 만들어 낸 기적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나중에 테레사 수녀가 쓴 편지에서 도저히 신을 느낄 수가 없다고, 너무 외롭다고 적은 부분이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다시 성인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지는 않는다. 그 의미가 뭔지를, 성인의 의미와, 그 외로움의 의미를 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인류가 정신을 차리고 역사가 정상적으로 흘러간다면, 정통적인, 보수적인, 배타적인 종교들은 쇠퇴하거나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데 초능력을 가진 만화적인 신들의 이야기였다.
유대교는 유일신교의 정체성을 양보하지 않고 지금껏 버티고 있다.
정치적으로 악용된 그리스도교는 그 원천인 예수를 왜곡하고 나서야 세력을 얻어 뻗어나가게 되고, 로마의 선택으로 범지구적 종교가 되어 버렸다.
카톨릭이 보여주는 한계는 인간의 굴욕적인 권력욕, 복종욕이다. 어떤 교황은 그 자리가 얼마나 미안한 자리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슬람교는 선지자를 신이라고 하지 않았다. 종교적 규범의 단순화와 흑백논리로 득세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신교의 유일한 장점은 성경을 평신도에게 쥐어 준 것이었는데, 잘 읽지 못했다. 읽어도 잘 알 수가 없다. 이미 왜곡된지 2천년이 지났기 때문에.
종교적 관념을 포함한 사람 수준의 인공지능을 가진 사이보그가 죽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다. 그런 일로 시간을 보내기는 좋은 것이다.
나는 인류가 가장 참혹하게 오류를 드러내는 전쟁이 내가 죽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늙어갈 것이다.
27쪽
역사는 정당할 때가 없다. 역사는 냉정한 연대기 기록자로서 결과만을 헤아릴 뿐, 도덕적인 척도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는 오직 승리자만을 응시하여 패배자들은 어둠 속에 남겨둔다. 이 '이름 없는 용사들'은 거대한 망각의 구덩이 속에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고 내던져져 있다. 십자가도 없고 화환도 없다 희생의 행위가 헛되이 끝나고 말았기에 십자가도 화환도 이 잊혀진 자들을 찬양하지 않는다.
54쪽
언제나 도발적인 인간에게 굴복하곤 하는 인류는, 단 한번도 참을성 많고 공정한 사람에게 굴종한 적이 없었다. 오직 자신의 진리가 유일하게 가능한 진리이며, 자신의 의지가 세계 법칙의 기본 공식이라고 선포할 용기를 가진 위대한 편집광들에게만 인류는 굴종해왔다.
202쪽
그는 어느 시대에나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은 어떤 종교적인 이상이나 세계관의 이상을 가지고 자신들의 폭력 행위를 장식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는 모든 이념을 더럽히고, 폭력은 모든 사상을 타락시킬 뿐이다. 미겔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의 명이 아닌 장 칼뱅의 명령에 따라 불태워진 것이다. 모든 기독교 정신은 그런 행동을 통해서 지상에서 더럽혀졌다. 카스텔리오는 외친다.
203쪽
"오, 세계의 창조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여! 당신은 이 일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 옛날과 달라진 겁니까?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도 잔인하고 적대적으로 변했습니까? 당신이 지상에 계실 때 당신보다 더 선량한 존재는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비웃음을 당신보다 더 온화하게 참아낸 사람은 없었지요. 욕하고 침 뱉고 비웃고 가시관을 씌우고 도둑들 사이에 십자가를 못 박고, 이 모든 멸시의 한가운데서도 당신은 당신에게 이런 모욕과 수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이제 그렇게 변한 건가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당신은 모든 요구와 계율에서 당신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요구하는 것과 정확하게 똑같지 않은 사람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창자가 튀어나오도록 꼬챙이로 쑤시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칼로 찢고, 불에 그을려 죽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고 명령하십니까? 오 그리스도여, 진정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이까? 그와 같이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절단 내는 살상을 저지르는 이 사람들이 진정 당신의 종입니까? 그와 같이 잔인한 살육 장면에 당신의 이름을 증인으로 부르는데도, 당신은 인간의 살에 굶주리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리스도여, 당신께서 진정으로 이런 일을 명령하신다면 사탄이 할 일은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고, 사탄처럼 이런 일을 하신다고 주장하는 이 무서운 모독이여! 악마의 의지력, 악마나 만들어낼 만한 그런 일들을 그리스도께로 미루는 이 인간들의 극악한 용기여!"
203쪽
"오, 세계의 창조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여! 당신은 이 일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 옛날과 달라진 겁니까?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도 잔인하고 적대적으로 변했습니까? 당신이 지상에 계실 때 당신보다 더 부드럽고 더 선량한 존재는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비웃음을 당신보다 더 온화하게 참아낸 사람은 없었지요. 욕하고 침 뱉고 비웃고 가시관을 씌우고 도둑들 사이에 십자가에 못 박고, 이 모든 멸시의 한가운데서도 당신은 당신에게 이런 모욕과 수치를 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 당신께서 이제 그렇게 변한 건가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당신은 모든 요구와 계율에서 당신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요구하는 것과 정확하게 똑같지 않은 사람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창자가 튀어나오도록 꼬챙이로 쑤시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칼로 찢고, 불에 그을려 죽이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천천히 온갖 방법으로 고통을 주라고 명령하십니까? 오 그리스도여, 진정 이런 일을 허락하셨나이까? 그와 같이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절단 내는 살상을 저지르는 이 사람들이 진정 당신의 종입니까? 그와 같이 잔인한 살육 장면에 당신의 이름을 증인으로 부르는데도, 당신은 인간의 살에 굶주리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리스도여, 당신께서 진정으로 이런 일을 명령하신다면 사탄이 할 일은 어디에 남아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이런 일을 하신다고, 사탄처럼 이런 일을 하신다고 주장하는 이 무서운 모독이여! 악마의 의지력, 악마나 만들어낼 만한 그런 일들을 그리스도께로 미루는 이 인간들의 극악한 용기여!"
204쪽
비록 말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그 말의 영원한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진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은, 어떠한 테러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세기에도 인간성의 목소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도 입증하는 것이다.
205쪽
비록 말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그 말의 영원한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진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은, 어떠한 테러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세기에도 인간성의 목소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도 입증하는 것이다.
224쪽
그리고 카스텔리오는 <기독교 강요>를 인용했다. 옛날에 자신이 했던 말이지만, 오늘의 칼뱅이라면 어쩌면 그를 화형시킬 만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그 옛날의 칼뱅은 오늘 카스텔리오가 자신에게 들이대는 주장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강요>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범죄행위이다. 쇠와 불로 그들을 파멸시키는 것은 인문주의의 모든 원칙을 부인하는 행동이다."
286쪽
역사는 그 알 수 없는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해 때때로 우리에게 알 수 없는 퇴행을 마련해놓는다. 그리고 폭풍우에 가장 튼튼한 댐과 지붕들이 무너지듯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권리의 담도 무너져내린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순간에 인류는 깡패집단의 유혈이 낭자한 발광으로, 양떼의 노예 같은 양순함으로 되돌아가는 듯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