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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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서점가를 휩쓴 ‘힐링(healing)' 열풍은 해가 바뀐 올해도 여전히 유효할 듯싶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좇는지 모르는 채 사람들은 행진하고, 행렬에 섞여 보폭을 맞추느라 제 발 아래 차이는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격동하는 21세기 숨 가쁜 행군 속에 쓰러지고 분열하며 뒤처지는 이가 우리들이며, 행군 밖에서 제자리걸음으로 대열에 들 준비를 하는 이도 우리들 혹은 우리의 벗들, 가장들, 어머니들이다. 행군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은 지쳐있고 방향을 잃고 아파하며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 안의 까닭모를 우울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해 헤맨다. 우리를 찾아온 돌풍 같은 상처와 공허는 무엇으로 다스릴 것인가? 우리에게는 지금 상처를 감싸줄 위안과 치유의 힘이 절실하다.

 

 

  누가 우리의 폐허를 알아줄 것인가? 우리 곁을 떠난 수많은 선지자들을 떠올려본다. 그분들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 빈자리에 고맙게 피어난 치유의 꽃이 故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예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마지막 가르침 같은 이 산문집이 참으로 반갑고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이유다.

 

 

  당신이 왜 소설가가 되셨는지, 작가는 독자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껴안아야하는지, 여성성의 부드러움과 평화로움에 대해서, 작은 풀 하나도 사랑하는 마음이랄지, 남편과 아들을 잃은 고통을 자연과 시간이 어떻게 치유 하는지, 병상의 환자도 웃게 하는 생명의 눈부심이나, 작은 동물에게서 배우는 자연의 이치,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떠난 분들에 대한 편지, 화난 마음을 유쾌하게 다스린 친구의 지혜라든지, 조부의 내리사랑과 배려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손자에게 쓰는 당부의 편지 등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 글들 속에서 이 시대의 어른으로 사셨던 한 위대한 작가의 삶과 사랑(가족의 범위뿐만이 아니라 동식물과 사람, 자연, 조국, 언어에 이르는 넓고 무한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이 가르쳐준 지혜의 보고였고, 작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우러나는 당당함과 자애로움의 산실이었다. 작은 것에 상처받고 잔뜩 독 오른 마음을 할머니의 약손이 살살 풀어주는 느낌이다. 살갑고 다정한 할머니의 온기와 체취가 내부로 스며들어 우리를 순한 ‘강생이’로 만들어주는 기분. 뭉쳐있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진다.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집에 온 손님을 그냥 보내는 일 없이 끼니를 해 먹이셨던 어머니의 성정이 고스란히 작가에게 전이되었나보다. 전쟁의 혹한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살뜰히 챙겼고 아낌없이 나누었다. 우리에게 흐르는 민족의 정신이 그렇게 숭고하고도 박하지 않은 것이라면 차디찬 세상의 빗장을 여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않을까.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예쁜 것>을 읽다보면 어느새 인간 내부의 감춰진 힘, 자연과 보다 약한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알게 된다. 우리의 뿌리가 자연에 있고 더불어 사는 넉넉함에 기인한 것임을 깨닫자 멀게만 느껴지던 타자도 이웃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행군은 계속된다. 발은 부르트고 사람들은 지쳐간다. 하지만 대열 안팎의 우리가 모두 아픔을 짊어진 사람들이며, 그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끝까지 행군을 해나갈 힘을 얻는다. 작가가 우리에게 심어준 것은 삶과 인류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 발을 녹일 시간이.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신(神)도 예비 되어 있으니 머지않아 이 행군에도 끝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발끝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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