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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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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순수 본문만 700쪽을 넘는 이 대장정의 소설을 읽어내는 것(읽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읽어내야만 했다)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 이유가 단순히 길고도 긴 장, 장편의 소설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장의 장, 장편의 소설에도 쉽게 매혹되는 나는 가히 소설 체질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그런즉 내 말은 이 책이 힘들었던 것은 단지 내가 긴 소설을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다른 소설들과는 다른 낯선 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끌고가는데 왜 필요한지 모르겠는 장면들의 연속 같은 것들 말이다. 가정사를 토대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를 기록하는 수많은 소설들이 택하는 흔한 방식이겠으나, 오츠는 달랐다. 오츠 역시 많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1967년의 디트로이트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불안했던 사회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였을테지만, 그 방식이 너무 지루했다. 한마디로 이야기에 재미가 없었던 것(지극히 내 개인적으로). 그냥 단순히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걸까? 아니면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길게 늘여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이 조이스 캐럴 오츠의 스타일인가? 새삼 김영하가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통해 썼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는 뻔뻔하다.'

 

비평가들에 의해 플래너리 오코너나 존 업다이크 외에도 나보코프와 보르헤스 등과도 비견되고, 매년 노벨문학상에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는 조이스 캐럴 오츠를 소설 체질이라고 자부하는 나는 <그들>로 처음 만났다. 그녀는 1964년 등단 이후로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썼으며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문학의 모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는 세상사를 예민하고도 날카롭게 빨아들일 수 있는 촉수와 더불어 그를 표현해는데 지치지않는 열정을 가진 자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의 예민한 감성과 열정을 존중하는데 있어 작품을 좋아하건 그렇지않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건 내가 갖지 못한 종류의 삶에 대한 사랑, 혹은 정열일 테니까.

 

나도 처음부터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다. 저 두 사람이 날 이 지경으로 만든 거지. 저 두 사람 때문에 길가에 누워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꼴이 되다니. 나도 옛날부터 항상 이랬던 건 아니야. (중략) 나도 처음부터 이런 꼴은 아니었어. 저 할망구가 사라지면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할 거야. 에설이랑 같이. 너희들한테서 벗어날 거야. 잘난 척하면서 식량만 축내는 것들 같으니. 젠장! 지긋지긋해 죽겠어. 나도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좀 알고 싶어. 이리저리 휘둘리기 싫단 말이야. (중략)

나도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근사하게 차려입고 거리를 걸으며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중략)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 여기에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고. 진짜야. 지금 내 꼴도 싫어. 이런 머리 모양이라니. 게다가 몸도 너무 뚱뚱하잖아.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 난 다른 모습이야. 화장실이 또 말썽이지. 바닥에 물이 고였어. 내가 왜 그런 일에 신경을 써야 돼? 난 시내의 모든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20년 전에 콱 죽어버렸어야 마땅한 할망구를 보살피려고 태어나지 않았어. 저 뚱보 자식이 내 몸에 올라타게 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야! 그래, 난 전에도 지금도 취하지 않았어. 너도 알지? 난 지금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얼굴을 마주하고. 내 기분을 말하는 거라고. 너희는 너희가 특별한 줄 알지? 세상 사람들은 전부 자기가 특별한 줄 알아. 하지만 너희도 나보다 특별할 것 없어.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할 일도 아주 많고, 구경할 곳도 많아. 세상은 이게 전부가 아냐! 이런 게 아냐! 내 인생은 이런 게 아냐!(158쪽~159쪽)

50, 60년대 전형적인 미국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빈민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로레타와 그녀의 아들과 딸인 줄스와 모린이 겪은 그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이제 겨우 십대에 들어선 아들 줄스에게 하소연하는 로레타의 독백에 가장 많은 공감을 했다. 나 역시도 때때로 그러한 원망, 한탄, 핑계, 저주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 어떤 은근한 희망을 거는 말들을 남발하곤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한 방법임을 은연 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을 관조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젊음의 몫은 아니다.

사랑, 계급, 인종, 도시 문제를 그린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알 수 없는 삶을 살아내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책을 읽고있는 독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그들>을 읽으며, 그 안에서 내가 그들과 같은 하나 라는 것을 느낀 것은 바로 저 장면에서 였다.

관람하듯 하는 독서는 재미가 없다. 이야기에 젖어들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내 잘못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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