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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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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미군이 사이판에서 일본군과 대치하던 여름, 미국 본토에서는 유행병 '폴리오'가 번지고 있었다. 폴리오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질환으로, 감염되면 죽거나 치료되더라도 팔다리가 뒤틀려 마비 되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 질병이다. 일명 소아마비 병인 폴리오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발생하지만, 당시에는 전 연령층에서 발병하곤 했다.

필립 로스의 이전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네메시스>의 배경인 뉴어크에도 어느덧 폴리오가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었고, 아이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죽거나 소아마비 증상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폴리오에 대한 치료약이나 백신이 존재하지 않았고, 전염원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그렇기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병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고, 그런만큼 전염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사람들은 바깥활동을 자제하고, 이웃을 경계하며, 병을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누군가를 몹시 증오하며 히스테리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체육 교사인 버키 캔터는 지역 놀이터의 감독관을 겸하고 있다. 그는 형편없는 시력 탓에 참전하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육체와 강인한 정신력 등 운동선수로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스물 세살의 청년이다. 캔터는 자신을 낳다 죽은 엄마와 횡령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아버지 대신 외조부모에게서 성장했다. 그는 할아버지로 부터 무엇보다 '책임감'을 남자가 갖춰야할 제일 덕목으로 배웠고, 그를 굳게 믿었다. 그런 그에게 조국이 참전한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수치로 여겨졌다. 그렇기때문에 캔터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놀이터를 돌보는 일에 근육질의 몸과 운동선수의 용맹으로 전력투구하면서 그나마 남자다운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가르친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강인함과 결단력, 신체적으로 용감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해지는 것, 남들에게 휘둘리는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것.(34쪽)

 

캔터는 놀이터 감독관과 체육교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냄으로써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어느덧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캔터의 놀이터에도 어김없이 폴리오는 찾아오고, 많은 아이들이 병에 스러진다. 캔터는 폴리오가 번지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이 놀이터 감독이었던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폴리오의 매개자가 되어 병을 퍼뜨린 것은 아닌지에 대한 책임을 자책한다. 또한 그는 유대인으로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데, 불운한 자신의 태생이나, 전쟁터인 유럽과 태평양에서의 죽음들, 그리고 폴리오로 스러지는 이들의 불행을 용인 또는 조장하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여긴다.

왜 하느님이 앨런 마이클스 부모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았을까? 그분들도 틀림없이 기도를 했을 텐데. 허비 스타인마크의 부모도 틀림없이 기도를 했을 텐데. 그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야. 선량한 유대인들이야. 왜 하느님이 그분들을 위해서는 개입하지 않았을까? 왜 하느님이 그분들의 자식은 구하지 않았을까? (173쪽)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의 주인공 맥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러나 딸이 유괴되고 살해되자 믿음을 상실하고 하느님을 거부한다. 거대한 슬픔에 휩싸여 살아가던 맥은 딸이 살해된 오두막에서 하느님을 비롯한 삼위일체를 만나고, '용서란 자신을 지배하는 것으로 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오두막>은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에 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것을 묻는데, <네메시스>의 캔터 역시 같은 질문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불합리한 일을 신은 어째서 모두 용인하는가.

그렇지만 두 책의 결론은 조금 다르다. <오두막>의 맥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믿음을 회복하면서 자신과 화해한다. 그러나 캔터는 불행과 고통을 두고만 보는 하느님을 원망하며, 사랑하는 여인과의 행복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을 불행 속에 가두고자 한다. 

남자다운 강인함과 책임이라는 율법으로 자신을 옭아매던 캔터에게 어머니를 죽임으로써 태어난 자신의 존재는 전쟁이나 폴리오 이전부터 이미 부정한 것이었다. 이러한 무의식은 과도한 책임감과 끝없는 죄책감으로 변질되어 캔터의 전생애를 지배했으며, 자신은 행복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할아버지는 캔터에게 두려움을 이겨내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캔터를 지배했던 것은 죄책감이었던 것이다.  

 

캔터는 상처로 얼룩진 자신만의 오두막에서 죄책감과 원망으로 똘똘 뭉쳐 살아가는 것으로 자신을 만든 신에 대해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은 자신이였다는 것을 캔터는 알지 못했다.

"나는 평생 이런 존재로 살 거다. 나는 다시는 기쁨을 알지 못할 거다.(267쪽)"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율법의 여신으로, 교만한 인간에 대한 신의 보복을 의미하는데, 네메시스가 보복의 여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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