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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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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고 가장 깊은 암부에는  소실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사라지는 지점이라니, 지금의 자신이 가장 원하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미온은 구멍에 손을 넣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다. 진실의 입 같은 것이 손을 덥석 무는 정도의 스릴을 기대했으나 구멍 너머는 그저 캔버스 너머의 거리와 동일한 공간일 뿐이다. (94쪽, 관통)

 

생후 9개월 때 15층 엘리베이터에서 추락사한 엄마를 둔 하이는 건물 45층짜리 아파트의 외벽을 기어오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7쪽,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돈이 없어 낙태수술 대신 결혼을 택하고, 이유식비가 없어 꾸준히 모유만 먹이는 아기 엄마 미온 역시  길거리 전시회 중이던 그래피티 안으로  사라진다(75쪽, 관통).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느닺없이 덩굴식물로 변하는데(211쪽,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그 역시 실제의 삶이 온통 전쟁터같았던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택하는 사라짐과 같은 것이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주인공들은 사라지기거나, 모습이 변하기 전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 '어디까지 가야할 까요? 제가 어디까지 가면 될까요.'(270쪽, 어디까지를 묻다) 라고. 그리고 그들은 어느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보들레르'(74쪽, 관통의 서문).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길' 바란다. 주변에서 흔히 당하는 불행한 사건, 이를테면 일자리를 잃고 농성 천막에 나앉게 되는 일이 나만은 피해가길 바라거나, 온몸이 삭아버리는 비(145쪽, 식우蝕雨)가 나와 내 가족만을 피해가기를 바라거나, 아이를 때리는 몰상식한 부모이지 않을 것을 바라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런가 하면 이기와 욕망으로 덧칠되어 밑바닥까지 내려간 인간, 그러니까 농성 천막장을 피해 줄곧 땅만 보고 걷는다거나,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식우蝕雨'를 맞고있는 친구를 못본척 하기위해 안고있는 애견을 괜히 한번 쓰다듬어 본다거나하는 그런 무심한 인간으로 보여지기 또한 원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바램조차도 이기나 욕심 이상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본인의 불편과 무고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며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일에 발벗고 나서는 오지라퍼(103쪽, 이창裏窓)라도 되어야 하는 것일까?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는 섬뜩한 오컬트적인 이야기들이다. 도무지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하지 않지만, 사실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란 구병모가 그린 그로테스크한 세계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팔뚝엔 오소소한 소름이 돋는다. 나만은 그런 세상에서도 그다지 불행하지 않거나, 혹은 그만큼 불온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디로 가야할 지를 끝없이 물으며 돌고 돌 뿐인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보다 나아보이는 삶을 꿈꾸지만 도토리 키재기, 거기서 거기일 뿐이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의 단편들이 공포스러운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누구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길 바라지만, 그것은 누구나의 삶이다. 또한 그래서 구병모의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루초 폰타나의 작품을 보며 오지라퍼보다는 사라짐을 꿈꾼다. 어쩐지 커팅 자국 넘어서는 '관통'의 주인공 미온이 본 다른 세상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사라짐을 꿈꾸는 자 또한 나만은 아닐것이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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