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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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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국에 유학 중이던 중국인 난은 천안문 사태를 접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후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대학원의 정치학 과정을 그만두고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난은 낯선 땅에서의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공장의 야간경비원이 되거나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요리사가 되어 식당 경영에 매진한다. 뿌리를 내리기 위한 몸부림의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중년이 된 난은 식당 경영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이민자 대열에 들어선다.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난은 자신이 쏟아부은 각고의 노력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립하는 개인이 되기 위한 것었다고 말한다.

난은 당으로부터 정치학 공부를 할당받기 이전부터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버리지않고, 시상을 떠올리거나 시인들과 교류하고 문학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언제나 시인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뒤로 밀어둔다. 그 이유라는 것은 경제적 안정이 주된 것이 였는데, 자유를 찾아 중국이라는 국가 체제를 떠났지만,  자유국가인 미국에서조차도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돈을 벌지 않으면, 패배자이자 하찮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사람의 가치는 소유한 자산과 은행예금에 따라 정해진다.

돈, 돈, 돈. 이곳에서는 돈이 신이었다. -1권, 114쪽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비롯한 모든 개인적 취향과 욕구들을 박탈한 중국을 떠남으로써 비록 공산주의 국가 체제의 억압에서는 벗어나 표면적으로는 자유인이 된 것처럼 보였지만, 자유국가 미국에서도 난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지 못했다. 자유스러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돈벌이에 목이 매인채로 엉덩이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늘 쫓기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자유지상주의 국가 미국에서의 자유란 재정적 독립을 이룬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난은 돈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며 불안정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미국생활에 서서히 젖어들게 된다.

매일매일을 하루하루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하며,  시인이 되고싶은 꿈을 미룬채로 경제적인 안정기에 접어든 중년의 난에게 남은 것은 고독이며 외로움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꼭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자유경제주의국가 체제에서의 개인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는 몇 년 동안 모든 에너지와 정열을 식당 일을 빚을 갚는 데 할애했다. 그러나 빚이 없어지자 글을 안 쓸 핑계도 사라지고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안 할 핑계도 없어졌다. 그러다가 아내 배 속에 있는 딸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자신의 에너지와 삶을 다른 식으로 소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내 책임을 회피하고 살아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2권, 216쪽

어느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나자 난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하지만, 시인이 되는데 자신을 오롯이 쏟지 못한 것은 낯선땅에서의 정착을 위한 경제적인 안정도, 가족의 행복도 아닌 다른 사람의 눈에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난과 마찬가지로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 하진은 작가의 서문에서 <자유로운 삶>을 통해 이민생활의 물질적인 측면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차원을 다루고 싶었으며, 자유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값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그 값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로 이 작품을 썼다고 했다. 그렇듯 <자유로운 삶>은 태어난 터전을 떠나 새로운 땅에 둥지를 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지나온 삶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자식에게 열어주기 위해 현재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부모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또한 꿈을 포기하고 현실의 삶에 집착해야 하는 평범한 한 가장의 이야기이며, 크게는 한 개인에게 국가가 갖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이러저러한 이유로 진정한 자기 자신, 즉 자유를 잃어버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현실의 자기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난은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자유인일 수 없었다. 난의 이러한 삶을 보면서 아무것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완전한 개인이란 이쪽이든 저쪽이든 이념을 가진 '국가'라는 체제 아래서는 존재하기 힘든 추상적인 관념일 뿐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대목에서 '모든 권력은 억측가들의 손에 있으며,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데는 관심이 없다' 라고 했던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없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 책이 어디에 있더라.

 

개인에게 국가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묶는 관념일 뿐입니다. 만약 나라가 개인에게 더 좋은 삶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나라가 개인의 삶에 해가 된다면, 개인에게는 국가를 포기하고 국가한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 -1권, 501쪽

나 역시 내 삶보다는 나은 아이의 삶을 위해 오늘을 살아내지만, 그런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지푸라기 같은 개개인들들의 삶은 드러나지 않고, 그들이 있거나 없거나 국가라는 피상적 존재는 오늘도 그 몸집을 부풀려만 간다.

조국 중국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하지 않겠다는 주인공 난의 깊은 절망에 반하는 굳은 의지 따위에 나는 목이 메이도록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 어느때보다 이민에 대한 생각이 간절한 요즘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만을 배우고 자란 나로서는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지 않았다고 꼼꼼히 따지는 일에 게으름을 부린다. 그래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커트 보네거트는 역시 <나라없는 사람>에서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니, 부디 현명한 사람이 되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만 간절하다. 한편으론 어떤 순간에도 국가에 절망하지 않는 메이 홍과 같은 국가주의자, 혹은 보수주의자, 또는 국수주의자(?)들의 끝 모를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차라리 디아스포라이고 싶다.

 

<자유로운 삶>은 나고자란 땅과는 모든 것이 다른 생소한 땅에서의 정착을 위한 이민자의 어려움,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그 역시 두려움이나 게으름 따위에 대한 변명일 수 있겠지만)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인간적인 고뇌 외에도 국가와 개인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였던 반면, 유명 출판사와 유명 번역자의 작품임에도  2권의 196쪽에서 9월이면 핑핑이 임신 3개월째 되는 때라고 했다가,  200쪽에서는 6월 말이 되자 핑핑이 임신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는 식의 오류와 잦은 오타가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 걸까. 좋은 책은 좀더 시간을 두고 꼼꼼히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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