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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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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몸에 매스란걸 대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국가적 재앙 때문이기도 했다. 나 역시 언제 어느때고 그야말로 느닺없이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온 몸으로, 온 감각으로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게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나 죽고난 자리에 슬픔이나 애통함 말고는 다른 어떤 감정도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면서, 내가 살았던 흔적을 곱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추하게는 남기고 싶지 않다는 다소 엉뚱한 욕심이 들었다. 그것을 욕심이라 표현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이미 죽고 없는데, 주변의 평판이나 감상이 무예 그리 중요할까 싶은 생각에서다. 그렇다. 이미 죽고 없는 판에 평판이나 뒷말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나 죽고 없을 때 남아서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만의 비밀이 있었던가...

 

주인공 구동치는 딜리터다. 딜리터란, 자신이 죽은 후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싶은 비밀을 삭제해주는 이른바 뒷처리를 하는 사람인 것인데 처리하고 싶은 그것이 하드 디스크이든, 열쇠이든, 사진 한 장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계약자가 원하는 것을 깨끗이 지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계약자가 죽은 후에라도 감추고 싶은 비밀을 반드시 삭제해주겠다는 계약을 사전에 하고, 그를 실행할 것이라 믿는 일종의 사후 보험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반드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만, 구동치는 자신이 나름의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는 수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로 늘 계약을 성사시키곤 한다.

딜리터라는 말을 나는 이 소설에서 처음 알았다. 실제로 '딜리터'가 존재하는지, 작가 김중혁의 상상일 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있음직한 혹은 있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죽은 후에라도 아니 오히려 죽었기 때문에 알려지기를 원치않는 비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때문이다. 나에게는 사후에 감춰졌으면 하는 비밀이 있던가? 굳이 비밀이라고 할 것은 없지만, 이를테면 여기저기 걸려있는 인터넷 가입정보라든가, 그동안 적어왔던 리뷰라든가 하는 것들은 좀 지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딜리터 구동치는 업계에서는 제법 유능한 딜리터로 이름을 날리고, 자신의 죽음과 함께 숨겨야 할 것들을 가진 사람들은 속속 구동치를 찾기에 이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게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구동치는 굳이 물건을 없애는 것보다는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구동치는 두 개의 세계 모두에서 물건을 없애는 것을 풀 딜리팅 이라 불렀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내가 모르는 세계로 물건을 옮기는 것을 하프 딜리팅이라 불렀다. 물건을 그저 옮기는 것만으로도 딜리팅이 가능한 것이다. 의로인의 입장에서는 풀 딜리팅이든 하프 딜리팅이든 문제 될 게 없었다. 85쪽

 

반드시 책임지고 비밀을 없애겠다는 구동치의 약속은 엄밀히 말하면 지켜지지 않았고, 구동치는 마땅히 없앴어야 할 물건의 위치를 자신의 캐비넷 안으로 옮기며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분을 통해 나름의 합리화를 한다. 내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런 구동치도 결국에는 딜리터를 그만두는 쪽으로 결말을 낸다. 죽음 이후의 비밀까지 책임지겠다는 생각은 한낱 인간의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보는데, 어쩌면 구동치 스스로가 비밀을 간직할 명분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밀을 품은 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할 지라도 비밀은 세상에 계속 존재하고, 인간사와 세상의 이치를 쥐락펴락하며 흘러간다. 비밀의 경중은 간혹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기도, 누군가의 존재에 위협을 하기도 하지만 죽은자의 억울함을 대변하기도 하고, 잘못된 진실을 바로잡는 경우도 있다. 비밀은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꺼내져야만 그 수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던가. 구동치는 비밀을 감추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 비밀의 감춰진 속성, 즉 비밀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딜리터를 그만두게 된 것이 아닐까. 오랫동안 간직했던 아버지의 점퍼와 비슷한 점퍼를 바다에 던져버림으로써 생의 미련을 던져 버렸듯이 비밀에 대한 집착을 던져 버린 것은 아니였을까.

제목이 어째서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었을지 생각해 본다. 작가는 죽은자의 비밀을 그림자라고 보았을 것이다. 실체는 사라졌어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커져만 가는 그림자는 살아있는 이들을 덮치지만, 밝음 속에 꺼내짐으로써 그 수명을 다 할 비밀을 그림자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주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 - 328쪽

 

나 역시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한 후, 옷장과 서랍, 책꽂이 등 주변의 물건을 돌아보며 내 소유라 이름할 수 있는 것들을 줄여가야 겠다는 다소 청승스러운 생각을 한다. 남겨진 것이 많을 수록 삶에 대한 미련도 많아질 것이며 좋은 평판을 남기고자 하는 추한 욕망도 커질 것임으로.

 

소설은 읽기 수월했고, 영화를 보듯 눈앞에 장면장면이 쉽게 그려졌는데 작가가 영화제작을 염두해 두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만약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무도인 차철호 만은 누굴 캐스팅하면 어울리지가 딱 떠올랐는데, 그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왔던 최민수의 매제 마동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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