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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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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은 로드 무비의 형식을 빌린 공포 소설이며...'

뒷표지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글에 책을 바로 읽지 못하고 몇 일간 미뤄 두었다. 요사이 기분이 매우 저조한 상태에 있는 나로서는 공포소설을 읽을 기분이 영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읽는 공포소설은 실제의 내용보다 몇 배로 더 부풀려져,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않곤 한다. 공포물을 즐길 줄 모르는 나는, 이를테면 이 책의 등장인물 중 되도록이면 삶을 비교적 낙관하며 물처럼 흘러가기를 희망하는 '정'과 같은 부류의 사람인 것이다. 

 

토요일 하루는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모처럼 뒹굴거리면서 책만 읽고 싶었고, 이처럼 편안한 주말이라면 공포소설도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소개를 읽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를 조문가는 세친구에게 죽은 친구가 나타난다거나 하는 따위의 아주 말초적인 공포를 상상했던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너무 익숙해서 전혀 공포스럽지 않았던 것에 대한 느닺없는 공포였다. 누군가 내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보고 있다는...

 

죽은 친구 A의 조문을 가는 김, 정, 최는 각각의 장에서 차례로 화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한공간에서 일어났던 일임에도 표나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가 다소 의아스러운 동시에 공포스럽기까지 했는데, 어떤 대화에 대한 입장이나 정밀한 장면에 대해서라면 보거나 듣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 확연히 드러나는 모순들이 의외의 공포를 느끼게 한 것이다.

이를테면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세 사람의 귀에 모두 다르게 들렸다는 것인데, 정은 한국계 싱어송라이터의 나른한 음색으로, 김은 일본계 미국가수가 부르는 이별의 노래로, 최는 싱가포르계 가수의 사랑찬미가로 들었다거나, 혹은 차 사고로 죽은 친구A의 차를 누군가는 빨간 마티즈로, 또 다른 누군가는 푸른 아토즈로 기억하는 식이였다. 또, A에 대한 기억조차도 각각 표나게 차이를 보였다. 김은 A가 빛나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고 기억하지만, 다른 친구는 그녀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였다고 기억한다든가, 최는 그녀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고 기억하는가 하면, 다른 친구는 그녀가 무척이나 활동적이여서 몇년 간 응원단까지 했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여서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지만 이건 좀 정도가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잡힌 인간이 자기만 옳다라고 주장하기는 얼마나 쉽고도 무서운 일인지.

간혹 지나간 어떤 상황에 대해 내 말이 먹혀들지 않을 때, 비디오로 찍어둘 걸이라고 억지아닌 억지를 할 때가 있다. 내 기억이 무조건 옳다는 확신을 하는 것인데, <천국보다 낯선>을 읽으며 '내가 정말 옳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시점에서 각자의 말을 하던 소설은 마지막에는 한 곳의 시점으로 옮아가는데, 저 높은 곳의 전지적 시점인 그것은 바로 책을 읽는 나의 시점이다. 영화 속의 영화, 소설 속의 소설이 모두 그 작품을 보는 독자에게로 모이듯이.

어쩌면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내 삶도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그러니 내가 옳다라고 우겨대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책을 통틀어 가장 공포스러웠던 한 문장은 바로 이것이였다.

 

넌 신발 끈을 왜 목에 감고 있어?

간혹, 블로그에 올려둔 리뷰를 읽고 스포가 있다고 미리 써두지 않았느냐며 불평하는 댓글을 보곤 한다. 리뷰를 올리기 시작한 초기에는 그것이 무슨 잘못한 일인양 서둘러 리뷰를 닫곤 했다. 그러나 리뷰를 적는 것이 어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이니 만큼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감상을 적을 방법을 모르겠다.

어쨌든 리뷰를 읽는 것은 책을 미리 살펴보겠다는 의도인 만큼, 스포일러쯤이야 각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쓰는 것이 내 마음이듯, 읽는 것도 그대마음이니 불평은 조금 부당한 것 아니냐 하는 그런 생각이.

더군다나 책을 결말을 알기위해서만 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잘쓴 리뷰인들, 본 책을 읽는 것만 할까 말이다.

 

작가가 한 작품을 쓰는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작가마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하루만에 후딱 작품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책을 한 권 읽는데는 하루, 아무리 긴 작품이라도 길게 잡아 일이주면 충분하다. 이렇게 읽어버리고 나면 문득, 작가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작품일텐데 이렇게 쉽게 읽어버려 미안해요. 거기다 미주알고주알 이러고저러고 평까지 하고 말이에요... 하는 심정이 된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욕조에 몸을 담구고서도, 머리를 말리면서도 책을 눈에서 떼지 않은 덕에 모처럼의 휴일을 <천국보다 낯선>에 꼬박 바쳤지만, 어쨌든 작가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빨리 읽어버려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었어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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