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1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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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여기 이상한 나라는 멈추지 말고, 돌아보거나 기웃거리지도 말고 앞으로 가라고만 한다. 저 앞의 신호등이 켜지면 무시하거나 욕을 한다. 손가락질한다. 세계화 시대에, 무한 경쟁 시대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멈춘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자기 성찰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한다. -246쪽

이상한 나라가 바로 여기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나 친절한 설명을 읽은 후에야 이해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막연히 상상하고, '이상한 나라'가 가르키는 방향이 응암동 골목 지하 공간을 향하고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님을 이제야 이해한 것이다.

헌책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헌책만 파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가치를 팔고, 서로의 마음을 팔고, 책에 대한 사랑을 파는 이 헌책방은 돈에 대한 무한사랑으로 무장하고, 경쟁을 통해서만 자기 몫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이상한 나라인 현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상하지 않은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일일히 설명해줘야 이해할 수 있는 이상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물론 다른 전통적인 헌책방하고는 겉모습이 좀 다르지만 세무서에 헌책방으로 신고를 했고 실제로 중고 책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곳이다. (140쪽)

'2009 헌책축제'(이런 축제가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고,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축제가 영 성의없었다는 몇몇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과연 그러했던지 2009년 이후에 서울 헌책축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나로서는 무척 아쉽다.) 후, 헌책 계통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 쓴 글 중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헌책방도 아닌데 왜 초청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읽고, 주인장은 서운한 마음에 답글을 달았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다른 유명 헌책방들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것도 켜켜히 숨어있는 많은 헌책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헌책방이 맞다. 또한 청소년 문화 행사를 열고, 가끔은 노래도 하고 연주하며, 전시를 열기도 하지만 그러나 헌책방이 맞다. 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위한 책읽기 모임을 열기도 하고, 자신의 책을 가져다놓고 그 책이 팔리면 포인트를 적립을 받아 다른 책으로 바꿔볼 수 있는 순환도서를 운영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소를 대여하기도 하는 이곳은그러나 근본적으로 중고도서를 사고파는 헌책방이 맞다.

헌책방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책을 팔아 돈을 벌기 보다는 책을 통해 사람사는 세상다운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는 주인장의 독특한 세계관, 인생관 때문이다. 그는 동네마다 이러한 책방 하나쯤 갖춘 그런 나라가 이상하지 않은 나라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헌책방 주인이 우리동네에 없다는 것이 한참이나 억울했다. 앗, 그렇다면 내가 이런 헌책방 주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있다.

 

책방은 주인 혼자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곳이다. 그 가치는 책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동네 한구석에서 연기처럼 피어나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 고향 동네에서는 밥 먹을 때가 되면 온 동네에 밥 냄새가 난다. 집집마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네 골목 곳곳에 들어선 작고 소박한 책방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바로 구수한 밥 냄새가 되어 사람들을 배부르게 만들고, 배고픈 사람에게 원 없이 뜨끈한 밥을 퍼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작은 책방이, 그 책방을 들고 나는 평범한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281쪽)

진실로 진실로 우리동네에 이런 책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이던 저녁을 먹고난 후의 산책길이던 친구집을 들르듯, 무심결에 편안한 마음으로 습관처럼 들러 책을 고르고,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과 같은 작은 책방 하나씩 동네마다 품을 수 있다면, 하루하루의 삶이 이토록 강팍하게 여겨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또한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피시방엘 가노라는 말은 안하는 이상하지 않은 동네가 될 것도 같다. 억지로 독서토론 학원에 등떠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이런 공간 하나쯤 동네에 있어도 좋지않겠나. 아니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나.

 

책방에서 책만 팔면 그건 책이 아니라 책처럼 생긴 물건을 파는 거나 같다. 책을 파는 책방이라면 책 안에 있는 가치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가치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다. 그러니까 책만 팔아서는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 가치를 만드는 건 누구 한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만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철학하고, 그걸 그러모아 계획해야 하는 일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말 그대로 이상한 나라에 있는 헌책방이다. 나는 여기서 착한 일을 많이 만들고 싶다. 돈은 조금만 벌고 남은 건 다 착한 일 하는 데 쓰고 싶다. 착한 사람들 모이는 책방이 여기저기 동네마다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가난한 동네에도 책방이 생기고 부자 동네에도 책방이 생겨서 그 많은 책방들이 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로 가득 넘치면 좋겠다.(284쪽)

주인장의 이런 생각들을 읽으며, 이런 책방 하나 없는 우리동네가 갑자기 시큰둥하게 여겨졌다. 불과 1년전, 베란다 앞쪽에 산이 보이고,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난 후, 얼마나 행복했던지를 까막득하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것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나'라도, 다만 '우리아이'라도 책을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다독여야 겠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다독일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이며, '우리아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겠기에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5,000권 쯤의 책을 더 읽고, 감상을 쓰고싶다는 꿈 외의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좋은 책을 나누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는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이런 소박한 책방 하나, 나도 꾸리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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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2-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샵은 '중고샵'이나 '중고서점'이지 '헌책방'이 아닙니다.
이분이 하는 곳도 '복합문화공간'이나 다른 차원 책방이지 '헌책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헌책방은 '헌책을 파는 곳'이 헌책방이니까요.
예스24나 다른 인터넷책방에서 '중고 서적'을 판대서
이곳이 '헌책방'이 되지 않아요.

여러 문화활동을 하면서 '중고 책'을 판대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헌책을 파는 가게로 있어야 헌책방이고,
헌책방으로 있으면서 문화활동을 할 수도 있을 뿐입니다.

'전통적인 헌책방'이란 따로 없습니다.
'전통적인 옷가게'나 '전통적인 극장'이 따로 없고,
'전통적인 논'이나 '전통적인 시골'이 따로 있지도 않아요.

헌책방은 헌책방일 뿐이고,
'복합문화공간'은 그저 '복합문화공간'일 뿐이에요.
'헌책방'이라는 공간을 좋아하기에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쓰는 일은 자유이지만,
이 자유를 내세워서,
'헌책방'을 하는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