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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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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395쪽) 

 

히다 카자미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타고난 스키어다. 그녀는 올림픽 출전 경력이 있는 아버지로부터 세 살 무렵부터 스키를 배웠고, 그후로도 스키를 멀리 하지 않은 채 스키선수로 성장했다. 더구나 그녀는 스키를 좋아하고, 경주를 통한 경쟁을 즐긴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마디로 재능있는, 타고난, 무한가능성이 있는, 장래가 유망되는 스키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도리고에 신고는 스키선수로 적합한 신체적 조건을 타고났지만, 불행히도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스키라고는 타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스키를 선망했던 것도 아닌 그런 평범한 학생이다. 그러던 어느날 누가 보기에도 '행운'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 스키선수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지만, 기타리스트가 꿈인 도리고에 신고에게 스키선수가 되라는 것은 오히려 불행에 가까운 '선고'로 들린다.

 

하고싶은 일과 재능이 일치할 때 그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하고싶은 일은 뚜렷한데 그에 대한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을 비교적 자주 보게 된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타고난 작가적 역량이 부족한 사람, 체조선수를 갈망하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도대체 도약하지 못하는 체조선수, 의사가 되어 여러사람 살리고 싶은데 피만 보면 그야말로 피가 역류해 의사로서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의과대학생.

그런가하면 그에 반대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좋아하는 일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도리고에 신고 같은 경우 말이다. 이런 경우 재능과 하고싶은 일 가운데 도리고에 신고가 택해야 하는 길은 무엇일까.

유전자를 연구 조사해 스포츠 선수의 재능을 과학적으로 발굴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지도와 투자를 기울이므로써 회사의 수익을 노리는 한 대기업의 스포츠 과학 연구소는 카자미와 신고를 영입한다. 그들은 스키어로 대성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드러나는 카자미의 태생에 얽힌 비밀은 이 책을 마지막까지 몰고가는 견인차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고의 역할은..? 나는 마지막까지 그의 역할이 무척 궁금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폐인이 있을만큼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을 보장받는 작가지만, 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와 그를 혼동할 만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작가이다. 따라서 그의 책도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를 처음으로 읽었다. 책은 처음 손에 쥘 때부터 마지막까지 한호흡으로 읽어낼 만큼 흥미진진했는데, 책을 읽으며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다만, 책을 덮고나서 궁금해 진 것은 재능을 발굴하고, 그에 맞는 지원으로 그를 훌륭한 인재로 키워내는 것은 좋은일 일까, 나쁜일 일까 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영재교육이니, 맞춤교육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어린나이에 아이의 재능을 미리 알아보고, 아이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인재로 육성하자는 것인데, 그는 국가적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좋은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새삼 그것이 좋은일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의혹이 생긴 것이다. 재능과 적성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50의 노력밖에 하지 않는 사람이 재능 하나로 100의 노력을 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똑같이 100의 노력을 한다면 결국은 재능이 승부를 가른다. (10쪽)

 

재능을 찾아내어 인재로 육성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운동에 적합한 유전자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을 발굴한다는 발상이 한단계 더 나아간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운동능력이 뛰어난 인간을 창조해 내고도 남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우성교배를 통해 찰진 옥수수를 만들어내고, 알이 굵은 콩을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적어도 콩이나 옥수수가 아니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재발굴과 재능교육이 썩 유쾌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기능적으로만 존재하는 기계이거나 쓸모에 따라 이용되고 평가되는 대상이 아니다. 기능적인면에서는 떨어지더라도 누구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약해 운동선수로는 적합하지 않은 체력을 지녔지만, 무엇보다 높은 심폐 기능과 순발력이 요구되는 스키의 한 종목 크리스 컨트리로 극도의 성취감을 맛보는 후지이는 남과의 경쟁을 통한 승리가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은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

주말, 일종의 기분전환용 영화를 보듯 아무 생각없이 몰입할 수 있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뻐꾸기 알은 누구 것인가>는 할 수 있는 것과 하고싶은 것 사이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주는 책 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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