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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모르는 이야기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세상을 해석해서 우리에게 강요할까 두렵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모르게 될까도 두렵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계획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계획으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우리가 이해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는 계획, 혹은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계획이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책 읽는 사람들/알베르토 망구엘)
작가의 상상력 속 세계는 정말 무한대라는 것을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통해 또한번 실감했다. 나 역시 <개미>를 통해 그를 처음 알았고, <타나토노트>를 읽으며 상상력의 보고요 타고난 글쟁이인 베르베르의 이야기에 빠졌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두 편의 소설 뒤로는 어쩐지 그의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베르베르의 무한한 상상 속 세계를 탐험하기엔 나는 줄곧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일어날 수 없는 일, 혹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 사이에 줄 긋기 바빴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몇장의 종이 안에서 휘까닥 이뤄버리는 그의 세계가 나에게는 버겁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 그저 단순히 재미있게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는 베르베르의 상상 세계에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그렇게 나는 베르베르를 잊었다.
그리고 몇년의 세월이 흐른뒤 다시 읽게된 베르베르. 현재와 수 천 수 억만 년 전 기억의 영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인류의 미래 모습까지 오락가락해, 까닥하면 소설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인 이 장대한 과학소설에 나는 두손 두발 다 들어버린 심정이다.
초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던 아틀란티스의 거인족이 지금 현 인류를 창조했고, 현 인류는 핵전쟁과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로 부터 생존할 수 있는 소인족을 탄생시킨다. 피라미드나 이스터섬의 거인석상,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 등을 생각해보면 인류의 조상이 거인족이라거나, 갈수록 황폐해지는 지구환경을 생각해 볼 때 작아질 수록 생존의 확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는 무턱대고 헛된 상상이라고 몰아부칠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않는 나로서는 작가의 광대한 상상 속에서 매번 길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그만 책을 덮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모든 것이 그냥 되풀이 될 뿐이기에 거인으로 부터 현 인류, 현 인류로부터 미니인간에 이르는 과정 또한 되풀이 된다는 주인공 다비드의 말은 <제3인류> 전체를 관통하는데, <개미>에 이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되풀이 해 짜집기한 것이 <제3인류>라는 생각이 들만큼 2권을 읽을즈음의 나는 편협해졌다.
무엇보다 거북스러웠던 것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인류 스스로가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이용한 인간의 인위적 노력에 의해 인류가 진화해 왔고, 진화해 갈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에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줄기세포니, 복제인간이니,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의도대로 조작하며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일을 늘 탐탁치않게 여겨왔던 나로서는 소설일 망정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다비드와 일군의 과학자 일행이 미니 인간을 창조해 내고, 그들에게 도덕관념과 규율을 가르치고 행하게 함으로써 타락과 범죄를 경계하게 하는 것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종교를 창시하는 과정 또한 인위적 조작에 의한 것으로, 그것이 비록 인류 역사에 진실일지언정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유쾌하지 않았다.
바로 그것다. 영 엉뚱한 상상이 아님에도 이 소설이 끝내 내게 불편했던 것은 생물학적이었든 사회과학적이었든 인간이 '인위적 조작'에 의해 진화해 나간다는 발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 스스로 신이 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적 발상이 너무도 위험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제3인류>는 베르베르의 첫소설 <개미>의 연장선 상에 있다.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되었고 인류가 절멸한 후에라도 살아남을 개미에게서 그 삶의 전략을 배우자는 것인데, 소형화와 여성화가 개미의 끈질긴 생멱력의 비밀로 인류가 진화해 나갈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개미에게도 자의식이 있을까?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의식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상상일지라도 인간의 개미화가 인류의 미래라니 어지간히 암담하게 여겨진다.
상상력의 결핍. 정해진 규칙과 규범을 익히고 행하며, 허황된 상상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배우고 믿고 자라온 탓이라고, 베르베르와 나 사이의 문화적 교육적 괴리 탓에 끝까지 즐겁게 <제3인류>를 읽을 수 없었노라고 슬그머니 책임을 회피하고 싶다.
베르베르가 이 책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전쟁이나, 핵, 환경문제 등 인류사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당면 과제로 어쩌면 인류가 나아갈 바를 조명했다는 것에서는 높이 살만 하다. 그러나 진화를 위한 미니인간의 창조라는 명분으로 생산된 '에마슈'들이 첩보 활동을 위한 신인류라거나 전쟁은 허가받은 살인이며 전쟁과 자연재해를 통해 지구에게 버거운 인구 수를 조절해야만 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거북함은 끝내 해소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의 로봇과학을 언급하는 부분은 어쩐지 베르베르가 한국 독자를 의식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것은 어쩌면 자격지심이겠지만) 순수하게 읽히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와 종교의 창시 과정 등을 짚어주는 현실적인 베르베르는 멋있었지만, 그 외의 인간 창조라든가 수천년 전 전생으로의 억지 귀향 따위가 그야말로 억지스러워 책을 읽는 동안 점차로 흥미가 떨어져갔고,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한 나로서는 무한대로 퍼져만가는 베르베르의 상상력의 가지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권인 것도 버거워 죽을 지경인데 시리즈로 계속 출판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헉!' 소리가 난다. 나는 이 두 권을 읽어낸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하느님이 되었든 알라가 되었든 가이아가 되었든 신의 존재를 믿는 나로서는 인간 스스로 신이 된다는 상상은 참으로 벅찬 상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모르는 이야기를 두려워한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세상을 해석해서 나에게 강요할까 두렵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모르게 될까도 두렵다. 내가 제대로 알고있던 계획이 이해하지 못하는 계획으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이해하더라도 아무런 감흥도 주지않는 계획, 혹은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계획이 바뀌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신간은 역시 두렵다. 이모저모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