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평점 :
언어연수를 위해 몇달간 미국에 머문 주인공 케이는 뉴욕에서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누린다. 그것들은 한국에서는 금기시 되는 것들로 전혀 일상적이지 않았기에 케이에게 뉴욕의 경험은 '천국에서'의 추억으로 남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케이에게 주변의 모든 것이 시시하고 촌스럽게 느껴진다. 세련되지 못하고 어딘가 덜 떨어진 듯 여겨지는 사람들과 한국의 모든 것이 어정쩡한 상태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케이는 억지스럽게 우기면 중류층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가정의 맏딸로 소유의 정도로 한인간이 판가름나는 자본주의 문화에 깊이 젖어있다. 그녀는 천국이었다고 기억되는 뉴욕에서의 경험과 돌아온 후의 방황을 통해서 정말 어정쩡하고 불안정한 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재미없고 시시하며 어정쩡하기까지 하지만 안락한 수족관을 박차고 나올 것을 결심하는데…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그다지 길지 않은 장편 속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뉴욕에서 만난 친구 써머와 부동산으로 신흥부자가 된 써머 부모의 이야기, 유대인과 독일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댄이 미수에 그친 테러 이야기, 보여지는 조건은 멀쩡하지만 알맹이는 양아치인 남자친구 재현의 이야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성실히 살아보려는 지원과 인간이 지켜야할 '분수' 따위는 없다고 자꾸만 튀어나가는 그의 누나 지은의 이야기, 그리고 노조측과 사측에서 모두 이용만 당하는 지원 아버지의 이야기, 독일에서 유학했다는 치킨집 아저씨와 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자살한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 거기에 위암으로 죽어가면서도 폐지를 주웠던 한 오십대 여자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은 사회적 맥락과 얽혀있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사회 속 개인의 불행과도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발문을 쓴 박가분은 어떤 점에서 김사과의 이번 소설이 시사 평론이나 르뽀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꺼번에 담고자 했기 때문인지, 중간 중간 말이 안되는 것만 같았고, 읽는 것으로도 피곤해지는 이야기들이 너무 버거웠다.
케이 가족 역시 가볍게 중류층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서 케이의 고민은 깊었다. 케이는 자신이 뉴욕의 상류층 '써머'가 될 수 없다는 것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며, 분노했던 것이다. SNS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보고 부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자신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고, 남들이 갖거나 혹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갖고 싶다고, 가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천박한 부러움의 세계인 현대 자본주의의 피상적 모습 속에서 케이는 방황하고 고민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로 케이의 방황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그저 누구나 겪는 성장통에 가까운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의 고민은 한마디로 '남이 날 좀 알아주면 좋겠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였다. 이보다더 속물적이고, 치졸하며, 유아적인 고민을 성장통으로 치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분수에 맞는 삶', 혹은 '분수를 지키며 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모두들 분수를 지키는 삶이 좋은 것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분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고 사회의 권유가 그렇다. 또 한편으로는 무엇이 '분수'인지를 배운 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남과 다르지 않게 살고 싶은 것이 '분수를 모르는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지 않는가.
열살이 되고, 스무살이 될 때는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로는 한살씩 더 먹게 될 때마다 충격을 받았던가. 조금쯤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관조하게 되었던가. 살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리고 이젠 포기하는 것이 더 편해지는 그런 나이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균 몸무게 이하로의 다이어트를 포기했고, 크림색의 고급 승용차를 포기했고, 이른바 명품이라고 칭해지는 백들을 포기했다. 무리해서 떠나는 해외 여행을 포기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 즉 '보여지는 삶'을 포기했다.
이른바 '폼'으로 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기로 한 것인데, 그러고 나자 다른 사람들로 부터 '욕 먹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전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욕 먹으며 사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아야 겠다 여기게 되었다. 또한 나 자신의 찌질함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나는 결코 평범 이상의 인간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너끈히 받아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쯤이면 '분수를 지키는 삶'이라고 여겨도 좋지 않을까?
주인공 케이 역시 수족관으로 표현되는 안락하고 산뜻해뵈는 쇼윈도의 삶을 포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생각있는 젊은이로 보이는 것, 좀 놀아봤던 사람으로써 뭔가를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분노를 포함해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어떤 가능성까지도. 그럼으로써 삶은 얼마쯤 가벼워지는 대신 삶과 주변에 대한 냉소는 더더욱 짙어지겠지만,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을 어떻게 봐 줄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될 것이니, 삶에 대해 그만큼 더 전력투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함정은,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나는 언제나 이쯤에서 가벼운 무력감을 느낀다.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 할 것도 없지 않은가.
2부를 열며 8쪽에 걸쳐 서술된 현대인의 권태와 자본주의 시장에 관한 그녀 나름의 의견이 너무도 그럴듯하고, 내 생각과도 꼭 같기때문에 감동스러웠다. 현재의 삶의 양식이 해결책이 아니라 현대인의 발목을 잡은 덫이 되어버렸다는 것까지도 요즘의 내 생각과 꼭 같았다. 르뽀라도 좋고 평론이라도 좋다. '자본과 개인'이라는 거대 담론을 이 한편의 소설로 녹여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순간순간의 에피소드에 적절히 녹여나지 못해 현실감 없게도 느껴졌지만, 어쨌든 '척'이 아닌, 어떻게 살지에 대한 진실한 고민을 하는 케이의 이후의 삶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케이가 느끼는 불안과 어정쩡함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