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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ㅣ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식>을 쓴 히라노 게이치로의 <얼굴없는 나체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교사는 남녀 회원의 프로필을 통해 만남을 주선하는 사이트에서 닉네임과 이성을 끌만한 프로필로 자신을 과장하고, 욕망과 쾌락을 위한 만남을 지속하던 어느날, 성인사이트에서 얼굴없는 자신의 나체와 수많은 댓글들을 발견한다. 거기에는 인격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저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 얼굴없는 육체와 함께 역시 얼굴이 없는 존재들의 과도한 욕망의 표현인 댓글들만이 무성했다. 히라시노 게이치로는 <얼굴없는 나체들>을 통해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보여지는 보통의 존재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발산하는 억눌리고 비툴린 욕망을 통해, 보여지는 곳과 보여지지 않는 곳에서 달라지는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준 것이다.
히라시노 게이치로는 또한 인터뷰를 통해 성인 사이트에 나체 사진을 올리는 것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은 매우 다르게 느껴지지만, 얼굴이 가려져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현실세계에서는 얼굴로 표현되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기 힘들지만, 가상세계에서는 닉네임으로 대표되는 익명을 통해 감추어진 또 다른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감추어져 있지만 내보이고 싶은면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보여지는 것을 감추거나 또는 확대 과장해서 재생산해 보이고 싶은 면이 있다는 이야기 일텐데, 아사이 료의 <누구>는 SNS 속의 과장되고 확대된 자신을 통해 만족을 얻는 현대인의 욕망 혹은 비굴함, 기괴함, 그리고 종내는 애잔함에 관한 이야기다.
다쿠토, 코타로, 미즈키, 리카, 다카요시들은 대학졸업반으로 현재 취업활동에 매진중이다. 이들은 취업을 위한 모임을 갖으며 취업에 관한 정보와 격려를 나누지만, 서로의 SNS 계정을 훔쳐보며 과장되게 표현된 홍보용 맨션에 남모르게 경멸과 비난을 일삼기도 한다. 그런 한편으로 자신들은 또다른 숨겨진 계정을 통해 비망록을 남긴다. 그러나 그조차도 진실된 자신의 언어가 아닌 보여지고 싶은 과장된 모습으로 씌여지고, 누군가는 자신을 과대평가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러한 모습 또한 서로서로 공공연하게 알고있지만, 얼굴을 맞댄 접대용 얼굴로는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서로 그렇게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부풀려진 풍선은 터지기 마련이고,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듯 아슬아슬한 경계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이들의 비밀 아닌 비밀도 그렇게 터지고 무너지게 되는데...
관찰자의 시선으로 늘 자신은 옳은 판단을 하고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감성과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SNS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을 과대포장하는 '류'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일삼던 다쿠토는 소설의 마지막에 자신의 장단점을 묻는 면접관에게 이렇게 답한다.
단점은 자신이 볼썽사납다는 점이며, 장점 또한 자신이 볼썽사납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다쿠토는 이번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지만,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옮긴이 권남희는 '옮긴이의 글'을 통해 소설 <누구>의 시작이 지루하고 평이해서 쉽게 빠져들지 못했다고 고백했는데, 나 역시 그랬다. 지루하고 평이했으며, 무엇보다 장면에 대한 묘사보다는 직접적인 대화와 간결한 문체, 140자로 요약된 트윗글 등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옮긴이는 작업을 다 끝내고 나자 핵폭탄급 여운에 허우적거렸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을 다 읽고나자 옮긴이가 느낀 공포를 나 역시 그대로 느꼈던 것이다. 세상에 보여지고 싶은 모습만을 부풀려 표현했는데, 그것은 진실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뿐만 아니라, 부풀려지는 그 과정조차도 다 알고 있는 관찰자가 있었고, 그 관찰자가 어느날 그간의 추악한 내 모습을 바로 내 코앞에 들이댄다면 그순간을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 진다.
나 역시 한때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손에 놓지 않은 경험이 있다. 유명인이나 동경하는 인물을 팔로우하고 팔로잉 되는 경험을 하며 트친이니, 인맥이니 허세를 부렸던 경험이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하이텔 시절의 채팅방을 경험했고, 그 다음으론 음악파일을 매개로 잡담을 나누던 이른바 음악 방송방을 지나왔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마음껏 부풀려진 내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던 나는 어느날 문득 그 모든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오랜 가상의 경험을 통해 '나는 절대 나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쿠토처럼 누군가가 가상 공간속의 '나'라고 주장하는 모습과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가 품은 추악함을 내 코 앞에 들이대준 경험이 없었기에 '나의 볼썽사나운 점'을 인정하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일 것이다.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까, 불행이라 해야 할까.
지금 한참 SNS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공감은 하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자기도 모르게 부정할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한 번은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원하는 만큼의 자기만족을 얻지 못하는 바로 그 순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허세로 똘똘뭉친 자격지심에 대한 관찰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떠오를 테니.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