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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탄생
송호근 지음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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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민의 역사를 통해 조선의 근대화 과정을 재구성하는 연구서이다. 조선의 근대화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저자 송호근 교수는 외부의 시선으로 보는 식민주의적 사관의 근대를 벗어나 조선의 자주적 근대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인민'을 통해서 조선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살펴보아야 했을까.

사회는 국가라는 이름의 지배 계급과 인민 대중으로 구성된다. 조선의 역사는 군주와 사대부로 구성된 지배 집단의 역사였으며, 그 속의 인민은 통치 권력에 의해, 통치 권력 위한 피조물일 뿐이었다.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권력의 정당화를 위한 객체로서 수동적이고 순종적이었던 인민이 스스로를 각성하고, 독자적 주체로 나아가는 과정은 시민사회로의 발돋음이며, 그는 바로 조선의 근대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교는 조선사회에서 오랫동안 종교였고, 사회의 조직 원리였으며, 교육과 문화의 핵심 가치였다. 뿐만아니라 근대를 통해 개화되고 진화된 한국 사회에서도 유교의 전통은 여전히 곳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생명이 유지되고 있고, 이에 조선의 경제사와 사회사, 정치사, 문화사를 연결해 조선을 총체적으로 조망해 보는 것은 한국의 현 사회를 해석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유방본'을 통치 철학의 명분으로 삼고있음에도 조선의 성리학적 우주관과 조상 숭배를 결부시킨 종교적 의례와, 신분 직역과 부세의무를 강제하는 향촌 지배, 그리고 그러한 지배이념의 도덕과 윤리를 재생산하는 교육을 통해 조선의 인민은 오랫동안 수탈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통치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에 이르렀다. 훈민정음에 그러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하더라도 언문은 인민으로 하여금 지배계급의 세계관을 습득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주체적으로 자신을 들여다 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언문은 유교의 세계관을 벗어나, 신 앞에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에 수많은 인민들이 순교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기제가 되기도 하였다. 천주교는 명시적으로는 유교의 사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지만 천주교 신자가 되는 자체가 유교적 통치 이념의 기반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조선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천주교도 탄압을 자행했다.

언문은 순종적이고 수동적이기만 하던 인민이 사회적 비판 의식으로 무장하는데 추동력이 된 것이다. 세종대왕이 미련한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는 표면적인 주장은 결과론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개인의 인식은 언문을 통해 담론이 되고, 확대되어 공론화 되었으며, 공론장에 모인 주체들은 실천 과정을 통해 점차로 시민사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 근대화의 핵심이며, 이는 조선뿐만이 아닌 세계 모든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근대화의 출발이다. 즉 통치 대상으로서의 인민이 아닌 주체로서의 인민, 근대적 인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후 사회적 상상의 인민, 저항하는 인민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욕망하는 주체인 개인이 됨으로써 체제와 권력으로 부터 해방이 되었는가. 나는 이 지점에서 그다지 명쾌하게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여전히 권력의 통치 철학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으며, 생각하는 인민은 생각조차도 권력에 조정당하는 지점에까지 이른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김태권은 십자군 이야기에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자는 그 역사를 되풀이 해야 한다' 라고 했다. 송호근 교수의 '인민의 탄생'을 통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주체로서의 인민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는가', 혹은 '다 할 수 있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인민이 시민으로 전화하는 과정을 담을 것이라고 예고한 2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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