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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학자인 저자가 한 파티에서 변호사이며 동시에 사회운동을 하고있는 한 사람을 만나는데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런던의 빈곤퇴치 집단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재단에서 일하고 있었던 변호사는 IMF가 하는일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고, 뿐만아니라 돈은 빌렸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했다. 저자로서는 변호사의 주장이 놀라웠던 것인데, '부채는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사회통념이며, 그만큼 일반적인 생각이다. 나 역시도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부채를 갚지 않는다는 것은 내 몫이 아닌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의 오류에 대해 이 책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으로 화폐는 물물교환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주류 경제이론에 반하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시장은 자본주의와 같은 의미가 아니며, 시장이 재화 창출의 장이기 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의 장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얻기위해서 정작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신용과 상호부조이며 그에 합당한 규범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전통적인 '시장' 본래의 의미일뿐더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제안한다. 이러한 시장구조를 회복할 때 '경쟁'은 더이상 생존을 위한 덕목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단순한 생존 외에도 자식을 돌보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평균적인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다방면에서 빚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딱히 사치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권하는 사회가 현대의 자본주의이며,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손쉽게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신용카드와 대출은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작위로 권하여 지고, 부채없는 소박한 삶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사회에서 정작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책임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로 돌아간다. 이는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라는 사회통념과 맞물려 채무자는 부도덕하며,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부채를 갚지못하는 채무자, 즉 범죄자를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채무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예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막을 내렸지만 현대사회는 새로운 채무 노예들을 마구잡이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 책을 '부채'에 촛점을 맞춰 읽기 보다는 '시장'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는데, 필요한 것의 충족을 위한 '시장' 본연의 의미를 회복할 때 '인간 경제', '공동체의 의미'가 회복된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과거 부채의 역사는 부를 쥔자들이 빈자를 향해 행하는 갈취와 폭력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의 부채는 현대에도 여전히 사회 절대다수인 빈자들을 향한 자본의 '폭력'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일까에서 출발한 의문은 해소되었는가.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여전히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어떤 부채는 채권자의 부당함이 채무자의 도덕적 의무에 가려지고, 도덕적 의무라는 관념은 채권자들이 제시한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욕망은 곧 끝없는 경쟁을 의미하고, 유한한 행성에서 성장의 엔진은 영원히 가동될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에의 귀결을 위해 저자는 물물교환 시대로 부터 다양한 시장의 사례와 금전 외에도 다양한 부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양이 너무 방대하다못해 자못 산만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모든 것이 금전으로 환산되는 부채의 시대를 넘어 서로 호의를 빚질 수 있는 인간관계를 회복하자는 인류 미래를 위한 제안에 이르기까지의 책읽기가 너무도 힘에 겨웠다.

자본주의는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은 자본주의를 대신해 새로운 상상을 하고,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역사의 행위자로서, 금융의 힘에 의해 우리 모두가 약탈자이며 동시에 채무자로 내몰리는 현실을 극복하자는 취지의 이 책이 좀더 대중적으로 좀더 요약되어 쓰여져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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