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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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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몇몇 국가들 즉, 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의 나라들은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몇몇 주류 신문들은 그들의 위기가 무분별한 복지정책에 있다고 논평하기도 하는데, 이 책의 저자 토머스 게이건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사기다. 관광업과 해운업을 빼고는 이렇다 할 산업 기반이 없는 경제 후진국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경제적 위기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복지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미국 자본주의의 신용 사기극에 말려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수많은 노동 분쟁과 소송 사례들을 직접 체험한 미국의 현직 노동전문변호사로서 미국의 노동문제와 복지현실에 정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가 더 많은 경제적 수익을 위해 더 많은 노동에 시간을 할애할 수 밖에 없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는 이 책은 학자의 문체가 아닌 한 편의 에세이 같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곳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떠올렸으며 뿐만아니라, 순간순간 저자가 빌 브라이슨이라고 착각까지 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문체가 재기발랄 했다.

 

저자는 책의 성격상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노골적인 흠모를 드러내고 있는데, 책의 곳곳에서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며, 더더군다나 유럽에서 살 마음은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에서 비교적 고소득층에 해당하는 자신이 하는 주장이 현실성이 없거나, 혹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 여지가 있는 것에 대해 견제하고 있는 저자의 태도가 자못 귀엽기까지 하다.

저자는 자신의 조국 미국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비인간적인 성장만을 지향해온, 그러나 이제는 하향길에 접어든 미국식 자본주의에 안녕을 고하고, 대안으로 인간적인 권리를 좀 더 충족할 수 있는 독일식 사회민주주의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모델로 독일의 사회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는 이유는, 8300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독일이 현재로서는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제조업 강국임과 동시에 환경친화적인 국가이고, 노동자와 경영자가 회사 경영에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회민주주의 국가이며, 전국민이 TV나 인터넷 등 이미지 위주의 매체보다는 신문이나 책 등의 활자를 선호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주입식의 이미지 매체보다는 활자 매체가 생각할꺼리와 토론꺼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독일에도 미국식 자본주의의 매혹은 어김이 없었지만, 독일인들은 자본의 마력 앞에 빠져들 때와, 빠져 나올 때를 제어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저자는 공공재의 국유화에 있다고 본다. 독일 기본법 등 유럽 각국의 헌법은 자본주의의 과잉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데 국가의 목적이 있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으며, 교육·의료·도시 등의 공공재를 무료로 향유 할 수 있다.

 

미국인은 유럽인이 내는 세금의 5분의 4 정도를 세금으로 내지만 되돌려 받기는 유럽 복지국가의 5분의 4에 미치지 못하며, 유럽인은 세금을 낸 것 이상의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38쪽)

유럽의 국가는 걷어드리는 높은 세금으로 퇴직연금, 의료보험, 교육, 대중교통, 보육을 책임지며, 유럽인들은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저축도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5분의 4 수준의 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퇴직연금, 의료보험, 교육, 대중교통, 보육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미국인들이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몸이 부서져라 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름 중류층이라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평균 소득의 5분의 1을 은행빚을 갚는데 쓰고, 자식을 소득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게 하기 위한 교육에 투자하며, 과시적인 소비에 몰두한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언제나 '해고 불안'에 시달린다. 미국의 노동정책은 표면과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경영자 측에 우위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일식 사회민주주의의 저력은 '교육'에 있다. 독일의 교육은 '전국민의 대학교육'에 있지 않다. 독일에서는 어려서부터 정치적 협상 능력을 키우는데 주안점을 두는데 이는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집단행위를 목도할 때마다 그들을 '집단 이기주의자'들로 매도했다. 내가 비뚤어진 시선을 갖았거나, 반대로 당장의 내 불편만을 생각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권익을 위해서 해야하는 행동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을 끝없이 롤모델 삼고 있는 우리나라는 급기야 '의료민영화'까지 코앞에 두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에서 처럼 조만간 우리도 잘린 손가락을 들고 응급실로 달려가봤자, 비용때문에 절단장애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보다는, 내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라고 배웠지만, 국가의 실체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데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의무에 충실한 국가인가. 우리나라 헌법에는 자본주의의 과잉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조항이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어하지만, 누구나가 잘 살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누구나 경제적으로 부유하진 않지만, 누구도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거나 생계형 자살을 하지 않는 현실을 만들 수는 있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애 쓸수록 삶의 질은 하락한다. GDP의 수치는 행복지수와는 관계없다. 오히려 GDP가 증가할 수록 부자만 더 부자가 된다. 이것이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 뱉으며 연간 2300 시간을 죽도록 일하고도 해고불안을 겪어야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를 추종하고 있는 우리가 숨가쁘게 달려가기를 멈추고,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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