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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추천사를 읽으며 '매력적인 천재 파인만' 이라는 수사를 본다. 파인만이 천재라서 매력적인 걸까, 파인만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인데 천재이기까지 하다는 걸까, 보통은 전자가 아닐까. 우리가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를 매력적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은, 후세에 길이 남길 만한 업적을 이룩해놓지 못한 사람은 남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기억되지 못할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파인만 일대기를 읽고 나서 이런 시답지 않은 의문을 갖는 것은 사실, 그의 업적인 QED 라던가 양자 전기 역학 등의 물리 영역을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화로 읽는 간단한 설명이 아닌, 그의 강의를 직접 들었더라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어쨌든 나도 파인만은 매력적인 천재 였다라는 수사에 수긍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천재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통해 만난다. 그렇기에 이 책을 덮으며 한 생각은 몇 번이나 만지작 거리기만 했던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어야 겠다라는 것이였다.
내가 그를 그나마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건은 이 책에서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2차 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일에 동참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후 히로시마의 원폭 피해를 회상하며,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대목이었다. 파인만은 후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던 것을 회상하며, '사회적 무책임'에 대한 고뇌를 이렇게 정리했다.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행을 대비해 시작하고, 성공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서 끔찍한 결과로 나타났을 때 뭔가를 배웠다. 어떤 일을 할 때 끊임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까지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기밀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두번째 파인만의 매력을 실감한 사건은, 한때 자신이 자주 이용했던 토플리스 클럽이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만한 영업인가에 관해 재판을 받을 당시, 클럽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 모두가 클럽쪽 증인으로 나서기를 거부했다. 그 때 파인만은 주저없이 나선다. 필요에 의해 클럽을 찾았던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또 필요에 의해 증인서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파인만은 다른 사람의 이목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증인으로 나설 수 있었다라고 한다. 이 두가지 사건은 파인만이라는 사람이 천재적인 물리학자이기 이전에 감성적인 인간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천재 물리학자의 일대기를 살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그의 업적을 이해할 수 없다니 이보다 더 맥빠지는 일이 어디있을까.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만 해석하기로 했는데, 바로 그의 인간사를 살피는 일이였다. 첫사랑의 여인이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고도 결혼한 것, 그리고 그녀를 떠나보낸 후 슬픔을 처리하던 방식, 엉뚱하게도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취미를 한동안 유지했던 것, 또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운명의 연인 귀네스를 만나던 장면, 얼마간 할 수 없었던 연구를 토플리스 클럽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 투병생활, 그리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너무 지루해서 두번 죽는 것은 싫다 했다는 마지막 말 까지, 그는 확실히 유쾌하고도 독특한 인물이었다.
<과학 콘서트>를 쓴 정재승의 추천사에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누구나 리처드 파인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지만, 누구나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