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까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르트르와 카뮈 - 우정과 투쟁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성은 실천이 따를 때 빛이 나기 마련이다. 말만 앞서는 학자에게서는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그런의미의 진정한 지성인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사라니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애런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르트르 전문가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에게 치우치지 않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그랬다면, 읽는 나 또한 균형감을 잃지 않고 사르트르와 카뮈의 시대를 생각하는 치열한 고민과 그들 사이의 흥미진진한 논쟁사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우정은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 싹텄다. 8년이라는 나이 차와 관계없이 동일한 성향의 사유 선상에서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그들은 카뮈가 점점 공산주의를 자신의 정치적인 적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부터 카뮈와 사르트르의 단절이 시작되었다. 공산주의는 폭력의 동반을 필연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 염증을 느낀 카뮈는 프랑스 공산당으로부터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서 쫓겨난다. 바로 이 점이 사르트르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점이었는데, 사르트르는 카뮈를 참여하지 않는 지성, 현실적 갈등과 동떨어져 있는 이상주의자 라고 비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열렬히 펼쳤던 카뮈는 그 당시에는 정치에 대해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던 사르트르에게 정치적으로 선배 역할을 한 셈인데, 전쟁 후 카뮈가 공산주의와 결별함으로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레지스탕스 운동당시에는 그토록 용감했고, 완전히 자신을 쏟아부었던 카뮈는 전쟁 이후 돌변하여 위험을 무릎쓰는 것을 피하게 되었고,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이 카뮈를 변화하게 했을까. 단순히 폭력에 반대했기 때문이었을까. 카뮈는 사르트르와의 단절에 결정타가 된 <반항적 인간>에서 살인을 정당화시킨 자들, 곧 공산주의에 공조한 지식인들에 관해 집필했다. 사르트르는 이를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답하는 공개 서한을 보내 카뮈와의 단절을 공고히 한다. 사르트르는 카뮈가 대안적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서 공산주의를 거부한다고 몰아부쳤다. 결국 사르트르는 카뮈에게 '반혁명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실천이 없는 지성'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단절은 사르트르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반면, 카뮈에게는 눈에 띄는 절망을 안겨주었다. 예술가로 혹은 철학가로, 정치적 명망이 있는 지성인으로 상당한 자신이 있었던 카뮈에게 사르트르의 독설은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이에 카뮈는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사르트르와의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사르트르의 공개서한에 반박하는 편지를 쓰고 이를 공개하지 않고 서랍 속에 묻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카뮈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다. 그는 몹시 감성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사르트르는 인간관계에 그다지 종속되지 않는 인물로 비쳐졌는데, 그의 우정은 카뮈 외의 친구들과도 그다지 깊게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책을 읽겠다는 처음의 생각은 무뎌진 채로 카뮈에게로 기운 독서를 하게 되었다. 좌파는 무조건 공산주의자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까지 안고서.


카뮈가 반공산주의자 였다면, 사르트르는 반식민주의자 였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타인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것과 그의 권리를 가로채는 것을 못견뎌했는데, 이는 바로 식민주의에 대한 혐오였다. 그렇기때문에 사르트르는 억압받는 자의 정당한 폭력을 용인했고, 폭력없는 정의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까지 오자 나는 또한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때때로 카뮈에게로, 혹은 사르트르에게로 기우는 독서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흔들리면서 더더욱 근본적인 것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들의 논쟁사, 우정과 결별을 파헤쳐 우위를 확인하는 이 작업이 왜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카뮈나 사르트르 두 지식인 모두 각자의 길을 선택했으며, 그리고 그것은 옳고 그름으로도, 또는 어떤 우위로도 구분할 수 없는 각자의 신념이었을텐데 말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그들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옳았는가를 묻고 있는데, 카뮈가 옳았다면 사르트르는 틀린 것이 되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왜 그래야 하는가. 결국 나는 저자가 원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닌 사유 방향의 다양성과, 실험의 가능성을 존중하는 의도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분법적 논리로는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나자 한가지 의문이 든 것은 알제리 출신의 카뮈는 프랑스령 알제리를 진정 원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였다. 그의 사후에 알제리는 결국 독립했지만, 카뮈가 알제리의 독립을 반겼을지에는 영 자신이 없다.
어쨌든 이 책은 만만찮은 분량인데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사르트르나 카뮈의 작품을 읽는 것과는 또다른 재미로, 이 책을 읽고나자 그 어렵다는 <말>이나 <전락>에 도전해 보고싶은 강한 욕망을 느낀다. 일단 카뮈의 <반항적 인간>을 읽고싶은 책 목록에 올려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