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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화비평이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4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예비 여중생 납치, 강간, 살해, 유기 사건을 기억한다. 범인의 이름을 따 김길태 사건으로 명명된 사건은, 사건발생 20일만에 범인 김길태를 검거하였는데 각종 신문과 뉴스, 인터넷 등에서 범인의 얼굴과 신상이 모두가 공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흉악범의 인권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된 것인데, 당시 나는 푹숙인 머리칼 아래 날렵해 뵈던 인상의 김길태와 그에게 욕을 퍼부으면 곧 달려들 것 같던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서 김길태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채로 입양되어 성장했다고 하니, 친모는 그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양부모와 그의 주변인들에게는 몹시 당혹스러운 일이 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범죄인이건, 설령 그가 김길태와 같은 흉악범 일지라도 얼굴이 공개되거나 신상이 모두 공개되는 일은 목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인권 차원에서 범인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아닌, 범인의 부모나 주변인에게 못할 짓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당시 김길태 사건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 정도였다. 불행한 성장과정을 거친 범인에게 동정까지는 아니였지만, 가정환경의 중요성이라거나 한 아이의 부모된 자로서의 책임감 정도가 전부였다. 언론이 집중한 것도 범인에 관한 것이었고, 내가 언론을 통해 읽은 것도 그것뿐이였다.
경찰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범인의 얼굴을 공개하는 선정적인 폭로전을 감행했다는 것도, 언론이 경찰의 선동에 무작정 끌려가기만 했다는 것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범인을 벗어나 피해자인 어린 예비 여중생이 왜 집에 혼자 있었는지, 동네엔 왜 빈집들이 많았는지 하는 것들은 전혀 의심해보지도 않은채 사건을 잊어갔다. 그런데 이택광은 묻고 있다. 집 안에 있던 어린 소녀가 어떻게 납치될 수 있었는가. 소녀는 왜 혼자 집에 있지않으면 안되었는가. 동네에는 어째서 이웃이 그렇게 뜸했는가. 흉악범 김길태가 정신병자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해 관찰자 당신은 정말 무관한가.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동네를 재개발하는 것은 누구의 욕망인가.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이 사건은 불행한 과거사를 지닌 한 미치광이의 흉악한 범죄로만 해석되고 지나쳐져서는 안된다, 김길태 사건은 마구잡이로 달려온 한국의 자본주의 실상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이택광은 말한다. 재개발의 이권에 끊임없이 무릎을 꿇게 되는 한 김길태 사건과 같은 흉악범죄 또한 끊임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회 집단이 지닌 사유, 행동, 양식, 생활 습관과 방법,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사건 등을 문화라고 할 때, 문화를 읽는다는 것은 그 사회 전체를 읽는 것이다. 단순하게 문화적 현상을 기술하고 나열하는 것이 문화비평은 아니라고 이택광은 서문에 밝히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문화비평은 눈 앞에 펼쳐진 보여지는 부분 외에 사건이나 현상 뒤에 감춰진 원인과 그에 따른 해답까지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문화비평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비평가의 눈을 통해 보여진 현상들에 관한 해석은 읽는자 각자의 몫일 수 있겠으나, 사회 전체에 스며있는 풍토, 정서, 사유 등은 비평가의 해석 그대로 읽는 자에게 투영되기 쉽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비평을 읽는 것은 제대로 사회를 읽는 일이며, 또한 제대로 사회를 구성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인식에 관한 것으로 인식은 사회적 담론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고, 주도된 사회 담론은 또다시 사회의 문화를 구성하는 사유, 행동, 양식, 생활 습관과 방법,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한 사건 등으로 되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의 사회적, 대중적, 때로는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해 다룬 길지 않은 짤막짤막한 이택광의 비평들은 이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고, 그러한 이슈들을 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이택광이 제대로 된 눈을 갖은 문화비평가인지 알아볼 만한 혜안이 내게는 아직 없다. 그러나 위의 김길태 사건을 읽으며, 적어도 이택광이 가벼운 말발이나 독설, 혹은 냉소로 사회를 폄하하는 시선을 갖은 비평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파트 2인 사회와 정치 사이를 무척이나 관심있게 읽었다. 사회와 정치, 그리고 문화를 관통하는 것은 역시나 '자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기억하면서, 책을 덮는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촛불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관한 평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척이나 궁금하다. 문화비평이라는 장르 자체가 곧 정치적인 것이라고 한 이택광은 어떤 시선으로 자살한 노 대통령을 읽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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