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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국가는 국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며, 국가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동의 이익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집행하는 기관이며,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쓸 의무가 국가에게는 있다. 적어도 국가란 일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하는 이기적 공동체가 아니며,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착취하기 위한 도구일 수도 없다. 더불어 국가라는 무형의 관념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희생을 요구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국민학교 시절 대통령의 사진이 걸린 교실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단일민족 백의민족 따위로 치장된 애국심에 고취된 교육을 받았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보다는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를 먼저 고민하라고 배웠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안녕과 평화와 발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최근에 하게 된 것이고, 그 이전의 국가관이란 따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우리 민족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이므로 개인은 당연히 집단을 위해, 즉 국가공동체를 위해 희생되어질 성질의 '것'이라고 습관처럼 생각했다. 개인이 국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아주 발칙한 혹은 불온한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해왔다. 

그러나, 그러나, 생각이 달라졌다. 국가는 당연히 국민 개개인의 평화와 안녕과 발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개개인은 또한 국가에 자신의 평화와 안녕과 발전과 행복을 위해 무엇인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유시민. 그를 싫어하게 된 것은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직에 있을 때의 말발에 질렸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대통령도 장관도 빛나는 말발 때문에 욕을 먹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국민을 위해 더 나은 국가를 만들라고 뽑아놓은 대통령과 장관이 어지럽히는 뉴스가 날이면 날마다 모든 것은 그들의 말발 탓이라고 외치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하고는 상관없는 먼 일처럼, 내 한 몸 편키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국가와 내 행복은 직결된다는 것을 잊고서. 부르주아지도 아니면서 마치 부르주아지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그러던 어느날 잔치는 끝났다. 열정과 신념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비주류 대통령이 투신하던 날. 땡볕 아래 불타오르던 아스팔트 광장을 눈물로 매우던 그날. 그 모든 것은 끝났다. 내 한 몸의 평화는 결코 내 한 몸에서 시작되는 것도, 끝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었다. 가려진 진실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되었고, '것처럼'을 내 인생에서 빼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 책이 필요했다. 유시민의 이 책 또한 그래서 읽게 되었다. 그의 국가관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더이상 정치에서 비주류로 지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책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훌륭한 국가에서 개인의 훌륭한 삶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서문에서는 훌륭하다는 의미가 다소 모호했지만, 8장, '국가의 도덕적 이상'을 읽을 때 쯤에는 그 훌륭함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돌아가야 할 것을 마땅히 돌려받는 사회 공동체라면 응당 훌륭한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평한 사회적 배분이 가능한 공동체 안의 개개인의 삶의 질 또한 훌륭하다고 할 것 까지는 없으나 적어도 불만스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 유시민 대표도 밝히고 있지만 사실 국민은 이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관념보다는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을 실현시켜줄 정치인과 정부를 원한다. 실제적인 삶의 행복에, 정치적 사상적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될 수 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이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훌륭한 삶을 상상하기에는 현실적인 고통은 너무 크고,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능한' 정치인에 목이 마른 것이다. 여기서의 '유능'이란, '나를 잘 살게 해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실체적 유능을 말한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해 나 개인의 행복 실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개인이 행복한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9장, '정치인에게는 어떤 도덕법이 요구되는가'를 읽으며 나는 유시민 대표가 이 책을 진보세력과의 연합에 목적을 두고 썼다는 확신을 얻었다. 보수주의와는 달리 진보주의는 말 그대로 진보한다.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런데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공인된 지배적 사유습성을 바꾸려하는 시도는 불온한 것으로 본다는 베블런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진보적이라는 것은 탄력적이라는 말과도 비슷한것이 아닐까. 진화와 전진은 한가지 사상만을 고집해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연합하고 섞여야 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집단이 진정한 진보집단이 아닐런가 하는 생각도 가능하다.  

유 대표는 베버의 말을 인용해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 세가지로 열정과,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강조했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피력한 것이라고 보는데, 국민들이 연합정치를 정치적 권력욕이 아닌 진정한 책임의식으로 볼 수 있도록, 연합에도 발빠른 계산보다는 진정성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말발보다는 글발이 멋진 유시민 대표다. 정제된 그의 글은 그가 철학이 있는 정치인 임을 보여준다. 명예욕에 눈 먼 이론가이거나, 권력욕에 눈이 먼 정치꾼이 아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를 국민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할 책임의식과 자신의 이론과 자신의 정치활동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성찰하는 균형감각을 지닌 정치가 유시민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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