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남도로 꽃구경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벚꽃은 꽃몽우리를 터뜨리지 못했지만, 입고간 빨간 스웨터가 무색할 만큼 따뜻했습니다. 남도에도 늦도록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꽃이 터지는 시기가 예년에 비해 늦었다고해요. 활짝 핀 팝콘같은 벗꽃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현실감이 없도록 붉은 동백꽃을 보았지요. 어쨌든 꽃구경은 한 샘이라고 할까요.... 남도를 다녀온지 이틀이 지난 오늘은 벚꽃도 활짝 피어났으리란 상상을 해 봅니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한 여정입니다. 반갑습니다. 다시 만나니!  

 

  

러셀이 생존하며 글을 남겼던 20세기에도, 내가 현재 생존하고 있는 21세기에도 절실하게 필요한것은 온정과 너그러움이 아닐까합니다. 독단적이고 분파주의적이며, 율법주의적인 도덕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해악을 끼치고 있으며, 탐욕은 도처에 난무하고, 진실은 권력 밑에 압사할 지경입니다. 지난 한 해 '정의' 신드롬이 불었던 것은 그만큼 이 땅의 정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한세기가 지나갔어도 여전히 유효한 러셀의 인류의 행복에 관한 고민, 즉 사회적 정의에 대한 러셀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만나고싶습니다.   

 

 

 

   

자연을 살리는 일이 곧 인간을 살리는 일임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한편 자연을 살리는 일이 콘크리트로 에워싸고 인조 물고기를 띄우는 일이라고 믿을 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연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는 일이라고 도처에 띄워진 광고를 봅니다. 근본적으로 철학의 부재, 사랑의 부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정치인도 행정가도 아니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한사람으로,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회과학을 해야하는 이유,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책임만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너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를 이해하는 일임을 절감하기 위해. 공동체는 결국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릴 해법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우석훈의 주장대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함께 똑똑해져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모두 함께 잘 살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름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사회과학이란 학문은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나와는 상관없이 멀고먼 중동땅에서나 일어날 뉴스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고 전쟁이 가능한 땅에 살고 있음을 간과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의 보수가 보수로서 명목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의 가능성'을 언제고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조금은 발칙한 상상을 해봅니다. 언제고 우리에게 닥쳐올 가능성이 있는 전쟁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고자 이 책을 고릅니다.    

 

 

 

 

 

누군가의 스토리를 읽는 일은 안전한 거리감을 보장해줍니다. 적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은 내 이야기인 영화를 보면서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주인공과 나를 동일시하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상담심리사인 저자 선안남의 안내를 받아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내면 깊은 곳의 나를 만나게 되겠지요. 어떤 주인공은 어째서 내 마음에 그렇게도 거슬렸는지를 캐가다보면 내 속의 깊은 상처 또한 들여다 볼 기회가 되겠지요. 심리학에서는 그렇게 말하지요. 상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일은 자가치유의 지름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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