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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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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인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부터 시작한 나의 바다 사랑은 심연을 헤아리기 힘든 바다의 깊이를 노래한 유하의 <저 바다의 깊이>까지로 이어진다. 내가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알 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떨림, 슬픔,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만의 바다 빛깔을 물들이고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나를 설레게 한다.

 
하여, 미슐레의 <바다>를 만났을 때의 설레임 또한 특별했다. 미슐레의 바다는 수채화라기보다는 유화 같고, 한 편의 작품 이라기보다는 연작 같다. 표지 그림인 모네의 <벨일 해안의 폭풍> 그 느낌 그대로 이다. 벨일에서 바위와 절벽에 관한 연작을 그린 클로드 모네는 ‘바다를 그리는 유일한 화가’라는 절찬을 들었다고 했다던가. 혹은 바다를 매우 좋아해 ‘태생이 뱃사람인데 길을 잘못 들어 작곡가가 되었다’고 말했다는 드뷔시의 '바다'를 떠오르게도 한다. 드뷔시의 ‘바다’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항상 크리스마스를 떠올린다. 아마도 수많은 관현악 음이 종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리라. 드뷔시의 바다가 상상의 바다라면 미슐레의 바다는 바다의 실제 모습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바다 앞에 서서 어마어마함과 으르렁거리는 진동을 가슴으로 느낄 때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미슐레는 바다의 어마어마함과 함께 우리로서는 존재를 확인할 길 없는 바다 속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때문에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지루함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건 마치 드뷔시의 바다를 듣다가 무척이나 평범하고 잔잔한 음을 만났을 때와 같은 지루함이다. 바다의 전체를 아우르고 설득하기 위해 존재하는 지루함이다. 지루함을 건너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흔히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낭만적인 모습을 넘어 미슐레는 바다 한가운데 바다, 한 깊이의 바다를 만나게 한다. 마치 고래 등을 타고 춤을 추듯이. 길고 긴 끝나지 않는 시를 읽듯이.

바다는, 혹은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그 제자리 지킴이 못마땅해 초조한 이는 늘 우리 인간이다. 어떻게든 뒤집어보고 어떻게든 틀어놓아야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진보'라고 이름 한다. 미슐레는 바다 전체를 아우르며 바로 그 점을 걱정 한다. 자연을 인간 중심에서 노래하고 이야기하지 마라. 추악하고 오만한 인간의 욕심은 언젠가 이 모든 것의 끝을 볼 날을 불러들이고 말 터이니.


   
  바닷물은 맑은 샘이나 분수의 요정처럼 상냥하지 않다. 무뚝뚝하고 무겁고 무자비하게 때린다. 덤벼들면 강하게 반발한다.(p.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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