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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최정수 옮김, 한명식 감수 / 안그라픽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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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파리지앵 다이어리>(조수정. 지상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조수정은 건축학도로 파리에서의 유학기간동안을 에세이로 적었다. 책의 뒷부분에 그녀가 석사논문 마감 열흘 전 롱샹을 찾는 이야기가 있다. 건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이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하고 자신도 파리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사진으로 백 번도 넘게 봤다는 롱샹 성당을 석사논문 마감 열흘전에 끝내지 못한 과제를 마무리하듯 찾은거다. 석사논문 열흘전이라면 언뜻 생각하기에도 한나절은 커녕 반나절의 시간조차도 허비할 수 없는 절박한 시기인데 하루를 꼬박 투자하고 일부러 찾아보아야 할 만큼의 무엇이 롱샹엔 있었던 것이다. 롱샹성당은 근대 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의 마지막 작품이다. 건축학도에게 르 꼬르뷔지에는 의학계의 히포크라테스다. 

<파리지앵 다이어리>에 실린 롱샹 성당의 모습을 본다. 르 꼬르뷔지에의 천재성과 건축 철학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건축물이라고 소개되어있는데 내 눈에는 그저 거대하고 딱딱한 마른 버섯처럼 보인다. 흔히 생각하는 고고한 성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거대한 근대적 구조물이 안개속에 뿌옇게 녹아있다.  만일 내가 아름다움이란 크기나 규모, 높이 혹은 거기에 사용된 돈의 액수나 연극적 효과가 아니라 무엇보다 조화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면.......(본문 19쪽)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신조를 갖었다는 르 꼬르뷔제의 건축은 내가 보기엔 너무 날카롭고 너무 건조하고 너무 세련되었다. 건축물에서 인간미를 찾는다는 것은 모순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보는 그는 무척이나 시멘트스럽다. 아마도 건축은 차치하고라도 예술적 감각이 내게는 몹시도 부재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만나는 젊은 샤를 에두아르 자느레(르 코르뷔지에의 본명)는 도도하면서도 인간적이다. 드레스덴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아테네에서 폼페이로 여행하면서 쓴 여행일기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겠다는 목적으로 전통을 부정하는 세태나 몰 취미하게 돈만 쏟아부은 천박하고 과장된 건축물에 대한 비판과 함께 떼로 몰려 다니며 속물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관광객들에 대한 불평이 쓰여 있기도 하는가하면 주변 경치에 매료되어 무릎 위에 높인 책은 펼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행복과 고요한 기쁨을 느끼는 젊은 날의 르 코르뷔지에의 사사로운 글들을 마주할 수 있다. 사사롭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의 건축철학이 고스란히 쌓여가는 길목의 감성들이다. 자신만의 감성이 확고하지 못했다면 자신만의 철학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며 자신만의 철학이 없었다면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는 수식어 또한 르 꼬르뷔지에의 이름에 붙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천재란 표현할 줄 아는 자가 아닐까 한다. 느낌은 몹시도 주관적이나, 표현은 몹시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건축의 대가 르 꼬르뷔지에는 표현의 대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의 건축철학의 밑바당인 표현된 감성의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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