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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는 테피스트리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로 직조기술자 즉, 테피스트리 장인과 작업장, 길드, 중개상, 그리고 장인과 작품들을 소유했던 명문 가문에 관한 내용이다. 또,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이슬람 궁정 화가들의 세밀화에 얽힌 이야기로 이 또한 세밀화 장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 리처드 세넷의 <장인>을 읽으며 나는 위의 두 책을 자주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 속에서 삶을 찾았으며 삶이 곧 일이었다. 세넷이 정의 하는 장인의 정석 즉,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산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장인의식’은 이미 한물간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되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물질지상주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하는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란 현실성도 없고 실현가능성 조차도 희박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제 ’장인’이란 옛이야기에나 길이 남을 이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때에 저자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의 우리가 되기 위해 ’장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빠르다는 것은 소중함을 잃어버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장인을 수작업과 같은 의미로 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짚어보면 ’장인’이란 꼭 손으로 직물을 짜고, 세밀화를 그리고, 대나무를 엮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장인이란 의미를 확대 해석해 보면 ’사명감’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계와 속도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라면 특별히 한 작업의 명장이 아니더라도 사명감을 갖은 직업인은 이미 ’장인’이라고 명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키는 교사에게서도, 환자를 살펴보는 의사에게서도, 단순 반복작업을 되풀이 하는 기능공에게서도 먹고사는 수단이 아니라 일에 대한 애착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명감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사명감은 시민의식과도 같이 도처에서 발현된다. 그것이 바로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책은 분량도 만만찮고 내용 또한 광범위해서 만만한 읽을거리는 아니지만 장인의 시스템과 작업장, 기능의 숙달 과정, 동기와 재능 등 다각적인 면에서 한나 아렌트를 비롯한 러스킨, 프로이트, 에릭슨 등 여러 사회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이론을 병행해 장인에 대해 조망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이 모든 광범위한 이야기들이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조화로움이라고 생각한다. 다각도의 스펙을 갖춘 언제고 대체가 가능한 단순 기술자를 넘어 문명을 일으키는 장본인인 애착과 사명감을 갖은 ’장인’들이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