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파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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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ㅣ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가보지 않았어도 파리라는 도시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알고있다는 그 느낌은 무척이나 표면적이고 대중적이다. 진정한 여행가라면 누구나 다 가는 에펠탑이나 개선문 따위에는 그다지 감동하지 않을지 모른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유명지를 한 곳이라도 더 보기 위한 초조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저자처럼 파리를 내 집 드나들듯 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볼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봐두려하려는 관광객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도 한다. 스치는 관광보다는 머무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파리를 찾는다면 관광객 이상의 관광객이 되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여행할 수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파리를 여행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우선은 미술관을 가보아야 겠다. 저자의 권유대로 한 방을 보더라도 한나절을 다 소비해야 하는 루브르보다는 오르세를 먼저 찾을 것 같다. 무엇보다 패역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는 오르세의 쏟아지는 빛줄기 아래서 공기중에 부유하는 먼지들과 함께 인상파들의 숲을 헤치며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보고 싶다. 그리고 또 꼭 가보고 싶은 미술관이라면 로댕박물관을 꼽을 수 있겠다. 그곳에서 발자크의 누드가 발산하는 힘을 느껴보고 싶다(나는 이 책을 읽으며 로뎅의 화집을 다시 뒤적여 봤지만 발자크의 누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모로의 개인적 박물관을 들러보고 싶다. 그곳에서 3층과 4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을 밟아보고 싶고 살로메의 관능을 느껴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관광객의 초조함을 버리고 저자의 바램처럼 너그럽게 하루를 모네의 ’수련의 방’에서 보내는 여유도 만끽하고도 싶다.

나는 이 책의 제1부 파리의 예술 산책 부분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미술로 들여다보는 파리의 깊이는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로댕과 모네와 아르킴볼도의 화집을 들여다보면서 이책을 읽는 재미를 더 했다. 그러나 저자는 파리를 미술로만 해석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며 사진이며 또 파리라는 도시의 기능과 역사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저 만만하게만 읽을 책은 아니었다. 가끔은 모든 책이 인문학적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왜냐면 책을 쓰고 읽는 작업 자체가 이미 인문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도시 ’파리’의 해설서로 인문학적으로 파리 읽기라고 부제를 달고 싶다. 

하루아침에 급조된 신도시가 아닌담에야 어느 도시든 나름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전통과 문화는 그 도시 나름의 것을 잘 보존하고 지킬때 곳곳에서 깊이있는 정취를 풍긴다고 믿는다. 명품도시란 그런 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화를 목표로 나름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잊는다면 파리건 뉴욕이건 서울이건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의미의에서의 파리는 깊고도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