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다."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에요. 이재명 성남 시장이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작은 시정(市政)의 변화가 큰 국정(國政)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요. 자신의 개혁 의지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고 할 거예요.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어요. 작은 실수가 큰 낭패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미로요. 작은 부주의가 부른 대형 참사가 이 경우에 해당 될 거예요.

 

사진은 순천 시립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안에 있는 한옥의 주련과 그 해설판이에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은 잡지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이었던 한창기(1936-1997)씨의 소장품을 기증받아 세운 박물관이에요. 한창기 씨는 평소 한옥을 애호했는데 구례읍 산성리에 있는 김무규(1908-1994) 씨의 한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해요. 순천시에서는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을 지으면서 김무규 씨의 한옥을 사들여 이곳에 옮겨 놓았어요. 평소 한옥을 애호했던 한창기 씨의 뜻을 기림과 동시에 그가 혹호했던 건물을 박물관 옆에 놓아, 비록 사후일 망정,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뜻깊은 건물 앞에 세워진 주련 해설판이 건물의 가치와 의미를 일순간에 퇴색시켜 버리더군요.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에요. 주련의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볼까요?

 

丹心縣日月(단심현일월)    일편단심은 영원하고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는 가문에 전하고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학문으로 국가에 보답하고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는 자연에 있다

 

첫 구의 縣(고을 현)은 懸(매달 현)으로 고쳐야 해요. 縣과 懸은 비록 상통하는 글자이긴 하지만 한옥의 주련에 懸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해설판에도 懸으로 표기하는게 관람객에게 혼동을 주지 않을 거예요. 해석도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둘째 구의 해석도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로 고치는게 나아요. 세째 구의 해석도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로 고치는게 나아요. 네째 구의 해석은 "대의의 정신은 춘추(春秋, 공자가 편찬했다고 전하는 역사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상징)에 있도다"로 바로 잡아야 해요. 다시 정리해 볼까요?

 

丹心懸日月(단심현일월)    단심은 일월과 같이 영원하니  

忠孝可傳家(충효가전가)    충효를 가훈으로 전하네

文章思報國(문장사보국)    문장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걸 생각하나니

大義在春秋(대의재춘추)    대의의 정신은 춘추에 있도다

 

해설판의 주련은 한 구 한 구를 독립된 구로 풀이했으나, 주련은 성격 상 두 구 혹은 네 구를 연결지어 해석하기에 위와 같이 연결지어 해석했어요. 위 주련 해설판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춘추'에 대한 풀이예요.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어도 '자연'이라는 황당한 풀이는 하지 않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너무 무성의한 해설이라고 아니할 수 없어요. 만약 김무규 씨나 한창기 씨가 생전에 이 해설판을 봤다면 필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거예요.

 

낯선 한자를 두어 자 자세히 살펴 볼까요?

 

懸은 心(마음 심)과 縣(고을 현)의 합자예요. 마음이 윗 사람에게 매여있다는 뜻이에요. 心으로 뜻을 표현했어요. 縣은 음을 담당해요. 매달 현. 懸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懸賞金(현상금), 懸案(현안, 해결이 안되어 걸려있는 안건) 등을 들 수 있겠네요.

 

章은 音(소리 음)과 十(열 십)의 합자예요. 하나의 곡[音]이 완결됐다[十], 란 뜻이에요. 악장 장. 辛(매울 신)과 日의 결합으로 보기도 해요. 辛은 본래 죄수들에게 묵형을 행할 때 사용하던 바늘로, 묵형을 받은 죄수란 의미예요. 日은 묶음을 표시한 것으로, 죄수를 결박했다는 의미예요. 합쳐서, 죄지은 자를 구속할 수 있는 '법'이란 의미로 사용해요. 법 장. 후에 '글'이란 의미로도 사용하게 됐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예요. 완결된 곡처럼 잘 지어진 글, 혹은 죄수를 벌할 수 있는 법조문처럼 내용이 세밀한 글이란 의미로요. 위 시에서는 '글'이란 의미로 사용됐지요. 글 장. 章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樂章(악장), 憲章(헌장), 文章(문장) 등을 들 수 있겠네요.

 

在는 土(흙 토)와 才(재주 재)의 합자예요. 존재한다, 란 뜻이에요. 土로 뜻을 표현했어요. 존재하는 것들은 땅 위에 있다, 란 의미로요. 才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해요. 才는 본래 땅에서 싹이 트는 모양을 표현한 거예요. 싹은 땅에 의지해 존재한다, 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해주고 있어요. 있을 재. 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存在(존재), 現在(현재) 등을 들 수 있겠네요.

 

여담. 위 주련이 있는 한옥의 전경(前景)이에요(아래 사진). 한창기 씨가 한옥에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은 우리 것을 천시하고 외래 것을 추종하던 시기예요. 그의 한옥 사랑은 그의 시대와 연관지어야 그 의미가 드러나지요. 한창기 씨의 한옥 애호를 시대와 동떨어진 단순한 골동 취미로 평가한다면, 그건 대단한 실례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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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 2018-04-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찔레꽃님의 해박하고 정확한 한시해석,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