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가 있는건 아니지만, 영화 원작소설은 잘 읽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딱히 이유가 없었습니다. 독서편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안녕, 헤이즐‘ 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 책을 들고 다니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우선 빠른 전개와 깊은 몰입감으로 책이 술술 쉽게 읽힐 수 있었다는 점과
평소에 간과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삶과 죽음, 그에 대하는 자세‘라는 주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읽을 때는 참 쉽게 읽은 책이었는데, 글을 쓰려고 하니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책이 지닌 주제의 심오함을 비롯해, 캐릭터와 내용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말하기에는...그..뭐랄까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감명깊게 읽은 내용을 중점으로 서평해 보았습니다.
우선 간략한 책의 줄거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주인공 헤이즐은 말기암 판단을 받은 소녀로, 폐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어 산소탱크와 케뉼러를 달고 다닙니다.
남주인공 어거스터스는 골육종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대학생으로, 건장한 체격에 당당하고 밝은 성격으로 걸음걸이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둘은 암환자들의 모임인 서포트 그룹에서 만나 서로에게 끌려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참 간단하죠???)
1. 죽음을 바라보며
작가는 서포트 그룹에 참여하는 환자들, 그리고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에게 선천적인 결함을 부여했두었다는 점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는 이 책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헤이즐의 경우 신약과 호흡기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암세포를 전이시키지 않은 채 생을 유지하고 있었고,
어거스터스도 암으로 다리를 절단하고 건강을 찾은 듯 했지만, 책 후반부의 내용을 말하자면 결국 암이 재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개인의 선천적인 결함 탓에, 그들의 ‘사랑‘에도 결함이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상대적 유한성, 불규칙성, 단면성이 될 수 있겠죠.
(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불완전성을 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필연적이지만, 통상 사람들은 죽음은 자신과는 먼 이야기라 생각하며 삽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고 덮칠 준비를 하고 있는 이 둘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어떨까요?
언제나 죽음이 가까이, 머지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서도,
각자 그리고 함께 그 ‘죽음‘ 이라는 거대한 무력감에 몰두하지 않고 주체적이면서도 당당하게 헤쳐가려 노력합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적당히 부모에게 반항도 해가며,
‘ 지극히 십 대다운 ‘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가 아니라 소설로 읽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중간중간 이 둘이 환자라는 사실도 잊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작가가 귀신같이 다시 환기시켜주기는 하지만....(작가쉬먀..)
그렇게 둘의 모습은 그 존재만으로 눈부시고 아름답게, 그들의 사랑 또한 그렇게 그려집니다.
이 둘의 선천적 결함과 저와의 관계여부는 차치해두어도,
저는 기본적으로 이 둘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살아가면서 언제,어떻게든 그게 몇십년 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당장 오늘 저에게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인생 한치 앞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살아 있을 때 죽음을 기억하고, 살아있는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본 모토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둘에 더욱 깊이 공감&몰입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줍시다.)
( 또한 그러니까, 지금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왠만하면 합시다. )
2. 취향을 나누며
초반부에 서로 이름과 외형적인 모습밖에 모르던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 계기로 작용한, 그리고 이후 스토리 진행의 중요한 축의 전개부로 작용했던 내용중 하나가 서로의 독서취향을 공유하는 부분이었는데요.
내용전개상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이 둘의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는 서로의 ‘취향을 공유‘ 하며 ‘이해해 나가는 것‘에서 이게 순수한 사랑의 단면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헤이즐의 ‘장엄한 고뇌‘ 와,
어거스터스의 ‘새벽의 대가‘
책 장르로만 봐도 전혀 다르고, 각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다르지만서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3. 우리의 선택에 후회는 없어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라는 제목을 보며 유독, 이 책의 제목은 왜 이렇게 지어졌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소설 중간에 ‘장엄한 고뇌‘의 작가인 피터 반 호텐과 어거스터 워터스가 주고 받은 편지에 이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P 120
(......)
소녀가 나아지거나 군이 아프게 된다면 별들이 끔찍하게 교차하지 않는 셈이 되곘지만,
별의 본질이라는 것이 서로 교차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고,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
라는 말은 틀려도 이보다 더 틀릴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꽤나 심오합니다.
위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인용한 문구인데요.
저는 ‘별=운명‘으로 해석하는게 적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셰익스피어의 편지에 대해 반박하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개인에게 닥치는 행운과 불운등의 상황은 운명(별)의 탓이라고 하는 작가의 생각이 느껴졌습니다.
세상에는 수 많은 멀쩡한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암으로부터 고통받아야 했던걸까요?
잘못은 우리 별에 있다고하는 작가의 말은,지금의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록 운명이 암에 걸리고, 전이된 암세포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우리의 삶의 행복은 운명이 아닌 개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싶었습니다.
이 내용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드러납니다.
먼저 죽은 어거스터스가 죽기 전 헤이즐에게 남긴 추모사인데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 입니다.
P 325
(......)
난 그 애를 사랑해요.
그 애를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정말 행운아에요.
반 호텐.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서 좋아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상처받기를 자처해서 원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만은, 사랑한다고 수천번을 읇조리면서도 그 사랑 안에서 자신만은 절대 상처 받길 원하지 않는,
그런 사람과 사랑 또 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지금,자신들의 사랑이 남긴 상처까지도 받아들일줄 아는 헤이즐과 어거스터스의 사랑을누가 아름답지 않다고, 풋내기들의 가짜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극한의 상황은 아니지만서도,세상에 완벽한 둘이 어디있겠습니까.
서로의 단점을 발견하고 싸우고, 지치고, 실망하는 순간 또한 수도 없이 찾아올 수밖에 없을텐데, 그러한 순간에도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을, 그런 선택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4. 무한을 꿈꾸며
인상적인 부분만 말하다 보니, 책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거의 다 잘라먹고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왕 잘라먹고 넘어가기 시작한거 다 잘라먹고 감명 깊은 부분만 말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윗 부분과 함께,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P 272
˝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수학 이야기를 할게요.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12도 있고 그 외에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죠.
물론 0과 2 사이라든지 0과 100만 사이에는 더 ‘큰‘ 무한대의 숫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커요.
저희가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가 이걸 가르쳐 줬죠.
제가 가진 무한대의 나날의 크기에 화를 내는 날도 꽤 많이 있습니다.
전 제가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를 원하고,
아, 어커스터스 워터스에게도 그가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있었기를 바라요.
하지만, 내 사랑 거스,
우리의 작은 무한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어.
난 이걸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거야.
넌 나한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 ˝
헤이즐이 어거스터스에게 바치는 추모사입니다.
극적인 설정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신파적인 내용으로 빠질 수도 있었던 소설인데,
끝까지 읽어내려 가면서 이들의 밝음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인해 오히려 더 반성하고
삶에 임하는 태도를 되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한정된 시간이, 그들에게 지극히 유한한 시간이 주어질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들은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 외적으로 일반적인 연애에서도,
수 많은 제약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임은 틀림 없습니다.
그 사이에서 영원과 무한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분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