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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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5.14


작년에 ‘고전문학‘을 주제로 한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면서, 읽었던 많은 작품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삶에 영향을 끼쳤던 작품을 꼽아보라고 하면 ‘페스트‘ 였습니다.

내용 자체의 어려움으로 중간에 읽다가 포기했었던 작품들도 몇몇 있는 반면 (안나 카레리나,밀란 쿤데라의 소설들..) 극 소수이기는 하나 여러번 읽어본 작품도 몇몇 있었습니다.

사실 고전문학에도 취향이라는게 존재할 수 밖에 없어서,
자기에게 맞는 작품들은 몇번씩 다독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페스트‘도 그러한 작품들 중 하나인데, 예전 다른 독서모임에서 썼던 서평을 뒤적이다보니 작성날짜가 작년 5월 14일이었습니다.

고전문학 읽기에 재미를 붙여줬던 그 소설이, 1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질지가 궁금해서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읽은 지금에도, ‘페스트‘라는 상징이 가진 의미를 비롯해 작품속에 내포된 의미에 절반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예전에 읽었을 때 대비,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도 있고...꽤나 흥미로웠습니다.


2. 평온한 삶에 재앙같은걸 끼얹나


P54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페스트‘라는 거대한 재앙에 대한 연대기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복도에서 쥐가 한마리 죽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후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쥐가 2마리,100마리,2000마리.. 모든 도시의 쥐가 죽어나가는 소동으로 이어집니다.

도시에 있는 모든 쥐가 죽고, 이 무시무시한 병의 시선은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전체 구성 내 1부의 내용은 페스트 감염자들이 늘어나면서, 당국이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쇠하기에 이르는 과정의 서술입니다.

그때부터 페스트는 시민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 혹은 ‘갑자기‘ 라는 말이 어울릴 듯합니다.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있던 오랑시의 시민들은 이러한 급작스러운 재난을 상상하고 있었을까요?

정상적이라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언제든 삶의 한복판에 (죽음까지 몰고 올 수 있는)거대한 재앙 혹은 재난의 가능성과 맞닥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곰곰히 생각해보니, 삶을 지탱해 나가는, 재난에 맞닥뜨렸을 때 취하게 되는 ‘태도‘ 혹은 ‘가치관‘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카뮈의 소설제목 ‘페스트‘가 상징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책에서 나온대로 흑사병 그 자체가 될 수도,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이 될 수도,
읽는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른 개인의 상황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는, 각기 다른 케릭터의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였다고 생각되고 저도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말해보고 싶습니다.


3. 신문기자 랑베르

작년 독서모임에서는 이런 주제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 내가 페스트 계엄 상황에 처해있다면 , 어떤 등장인물의 행동을 선택하실건가요? ‘

라는 물음에, 저는 신문기자 랑베르를 꼽았습니다.

인물 개개인의 성격을 일차원적 시각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랑베르는 이 재난 상황을 도피하려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문기자로 특종촬영을 위해 오랑시로 온 외부인인데,
갑작스럽게 내려진 폐쇠령에 의해 시 내부에 갇히게 된 인물이죠

사랑하는 여자를 먼 곳에 두고 그 여자가 있는 장소로 필사적으로 돌아가려는 인물입니다.


P 273.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볼 대로 다 보고 나니,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후에는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음에도, 마음을 바꿔 시 내부에 남아 자원봉사 일을 돕는 걸로 마음이 변하는 인물이기도 하죠.

페스트를 처음 읽었을 때는 가장 인간적으로 그려진, 그리고 극한의 재난상황을 마주했을 때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인간 군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자신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마주한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피한다는 것이 그렇게 비난받아야 할 행동일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답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4. 의사 리유


두 번째 읽을 때 다시 바라보게 된 인물이었고, 실제로 제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해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P168


이 세상의 모든 병이 다 그렇죠.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고통에 있어서 진실인 것은 페스트에 있어서도 역시 진실입니다.

하기야 몇몇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구실도 하겠죠.
그러나 그 병으로 해서 겪는 비참과 고통을 볼때,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일 수 밖에 없습니다.


P 172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언제나 그렇죠. 나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추어야 할 이유는 못됩니다. ˝


P 216


˝(....)즉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P 285


˝인간의 구원이란 나에게는 너무나 거창한 말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원대한 포부는 없습니다.
내게 관심이 있는 것은 인간의 건강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이지요.˝


까뮈는 삶의 진리를 ‘성실성‘으로 규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리유를 바라보면서. ‘페스트‘라는 소설 자체가 병마에 맞서싸운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끝없는 패배의 기록이라는 점에 집중해서 볼 때, 리유의 삶에 대한 태도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맡은 직분을 영웅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고 성실하게 수행해내는 것이, 닥쳐오는 재앙에 패배만이 기록되더라도 채념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힘들지라도, 인간이 취해야 될 단 하나의 태도

진리가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실성에 인간의 선의지를 더한 것
그것이 도덕성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은 후 부터, 제가 견지해야 될 삶의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5. 우리에게 페스트란


사실 세부적으로 케릭터 하나하나를 파고들면, 얘기할 부분들이 참 많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대표하는 파눌루 신부

평시보다 페스트 상황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 혼돈적 인물 코타르

그랑도 따로 분류해 쓰고 싶었으나...

뭔가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 케릭터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리유와 우정을 나눈 또 하나의 희망의 상징으로 그려진 타루까지..

리유가 ‘페스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 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면, 타루는 ‘우리 삶에서 페스트란 무엇인가? ‘ 라는 추가적인 물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P327 ( 아버지의 사형판결 구형 모습을 본 기억 )


나는 내가 간접적으로 인간 수천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행위나 원칙들을 선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 자신이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P328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청렴,순결성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페스트‘라는 단어는 상징적인 의미로, 수 많은 단어들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현재도 통용될 수 있는 관념을 찾아보자면 그것은 ‘부조리한 삶‘ 이 적합하다 생각됩니다.

부조리하지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관행을 자연스럽다 여기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이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페스트를 한번 더 읽게 되면서, 약간은 느슨해져 있던 삶의 태도를 조금은 더 단단하게 조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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