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용도 1 (반양장) - 발칸반도.그리스.터키, 봄꽃들이여, 무얼 기다리니 세상의 용도 1
니콜라 부비에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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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년 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세상의 용도>는 672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었다. 이번에 나온 <세상의 용도>는 핸드북 정도의 크기에 3권으로 분간되어서 가볍게 들고 읽기 좋게 제작되었다. 이 책은 1953년 6월 스위스 제네바를 시작으로 1954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카이바르 고개에서 여행을 마치기까지의 일정을 담고 있다. 단순히 여행기만을 기록했다면 큰 찬사를 이끌어내기는 힘들었을테지만 세상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설명해주는 삶의 교과서로서 20세기판 '경이의 책'으로 불리우는 '지혜의 책'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작가이자 사진가인 니콜라 부비에와 화가인 티에리 베르네가 여행하면서 터득해나간다. 

'당신을 파괴할 권리를 여행에 주지 않는다면 여행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만큼이나 오래된 꿈이다. 여행은 마치 난파와도 같으며, 타고 가던 배가 단 한 번도 침몰하지 않은 사람은 바다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p.182

여행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뛰어들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자신이 머무는 나라에 깊이 빠져들어야 하고 되도록 오래 머물 필요도 있다. 스위스의 두 청년이 거쳐간 나라를 지도로 보고 알았지만 1950년대 당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낡은 자동차에 의지하여 9주일간 살 수 있는 돈만 가지고 떠난 것이다. 넘쳐났던 시간을 느림이라는 가장 소중한 사치를 누리기로 작정하며 낯설은 세계로 발을 내딛은 것이다. 놀랍도록 세밀한 풍경 묘사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글들은 단순한 기행문 혹은 여행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책으로 읽히게 만든다. 니콜라 부비에 가진 작가로서의 내공은 상당한 것이었다. <세상의 용도>는 그의 첫 작품이면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0년대의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었을까?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점점 빠져들었다. 니콜라 부비에와 그의 분신인 친구 티에리 베르네가 타고 있는 자동차에 함께 타고서 같이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 정도로 섬세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여행한 중간에 틈틈히 기록하지 않았으면 모를 세밀한 부분에 대한 묘사를 하며 글을 쓴 것을 보면 관찰력과 기억력이 꽤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을 다룬 책 중에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이 높은 책이라서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는 책이다. 그 긴 여정은 단순히 낭만과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와 예기치 못한 위험이 도사릴 지 모르는 낯선 세계에서 그들이 정해둔 목적지인 카이바르 고개까지 향해가는 긴 여행이다. 무려 18개월을 타지에서 다닌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교통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흑해 위에 펼쳐진 하늘 가장자리를 따라 담황색 빛이 뻗어있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무들 사이에서 수중기가 분주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풀밭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 있다는 게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또 뭐가 만족스럽지? 하지만 이 정도로 피곤할 때는 아무 이유없이 낙관론자가 되는 법이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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