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인생은 수요와 공급, 혹은 공급과 수요라오. 모든 게 그것으로 요약될 수 있소. 하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소. 역사는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소. 인간의 테이블이 역사의 쓰레기 구덩이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세 번째 다리가 필요하오. 그러니 받아 적으시오. 방정식은 바로 공급+수요+마술이오. 그런데 마술이 무엇이오? 마술은 서사시이며 동시에 섹스고 디오니소스의 안개며 놀이요." (pp.32-3) 



우리는 지금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가고 있을까?


 책 속의 누군가의 말 처럼, 역사는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도피할 수 있는 무형의 공간이 있었다.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젖은 마음이 도피할 수 있는 공간들도 우리는 참 잘 만들어왔다. 짧지만 분명한 문장에서, 자연을 훔치려고 했던 그림에서, 마음을 쌓으려고 했던 건축에서 -


 사랑타령, 인생타령이 고맙고 달콤한 시대는 2000년대의 소울메이트라는 드라마를 끝으로 사라진 것만 같은 작금의 시대에, 어떤 감성의 은유와 서술은 '오글오글'하다든가, '허세'라든가, '징징'거린다는 말로 너무 많은 구석에 몰려왔었다. 그런 그 시절들을 모두 겪고, 마음의 공허와 마음의 구덩이가 도피할 수 있었던 라디오와 책을 사랑하는 문장가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청해주는 사람이 있고,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참 좋아하는 라디오와 책에 대한 참 애정어린 설명들과 경험들로부터 더욱 아늑한 사실로 쓸쓸해지는 마음을 안심시킨다. 라디오와 책은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쨋든 들어는 보겠다는 아주 친절한 태도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라디오는 어떤가. 전혀 모르는 안면불식의 사람의 사연에 관심없을 우리에게, 라디오의 DJ와 음악들과 또 그와 둘러싸여 읽혀질 자신의 사연을 보내는 이들의 마음씀씀이가 마음을 해제시키기 때문이다. 책은 또 어떤가, 뉴스 헤드라인으로 보도되었다면 '서울시 강남구 사는 A씨 불륜 들키자 남편 살인 미수" 에 관한 숨은 사실이 아니라 사연을 읽어주는 활자들의 모임이기에, 타인의 사정을 주관적이고 단편적으로 판단하려 했던 우리의 마음에 포용력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 준다.


 " 라디오 피디의 최고 권력 행사는, 바로 물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음이야. 그렇게 묻고 들으면서 끝없이 살 방법을 찾아 헤매는 사람, 수많은 삶의 형태를 전하는 사람, 이게 라디오 피디라고 나는 생각해." ( p. 48)

 

 그리고 여기서 질문할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의 삶이 공허의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 경청과 포용력이 왜 중요한가? 하고.

 


즉, 수많은 삶의 형태


 경청하고, 포용한다는 것은 내가 보지 못했던 타인의 삶을 존중한다는 의미고, 그 존중이 모인 삶을 경외한다는 뜻이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애정은 그녀 말처럼 '수많은 삶의 형태'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제각각 서로 다른 결핍과 욕망과 트라우마로 점철된 시간의 정글짐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봐주지 않는다. 들어주지 않고. 이해하려는 것쯤은 섣불리 잘도 포기한다. 아니 애초에 귀찮은 일이다.


 때때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의 한시각 표정으로서, 한 문장으로서, 극히 일부로서, 그 사람의 인생을 다 판단하려는 속물로 살아갈 때가 있다.


" (...) 인생은 딱 이거야. 어떻게 살아왔냐야. 행복, 최후의 순간에 말하는 거야. 인생은 다 살고 끝에 가서 말하는 거야. " (p. 268)


 정혜윤 PD는 우리가 공허의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 나은 경청과 포용력으로 인생을 길게 이해하고 안아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녀가 14편의 이야기 중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 이라는 이야기를 실을 적에 저런 대화를 적을 수 있던 것도 그 수많은 삶의 형태에 대한 애정을 가졌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역시 '빠삐용의 아버지'에서는 그런 대사가 있다. 우리의 행복이란 남들의 시선 속이 아니라, 지상에 식탁에 책상에 잠자리에 그리고 산책길에, 또 자전거와 책 속에 있다고. 인생을 일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은 행복도 다양한 모습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이 14가지의 이야기는 여러 삶에 대한, 얽힌 사연들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소중한 사랑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나는 누구 말처럼, 정혜윤이라는 참 외모만 보더라도 이국적이고, 그 특유의 모자를 늘 눌러쓴 소녀같은 면모를 가진 그녀의 글들이 너무 길게 늘어져 있고, 주관적이며, 때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하더라도 좋다. 어떤 감정의 흩뜨러짐과 깊은 고립이 오글오글하다거나, 불필요한 징징거림이 아니라 그대로 건강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해주는 것 같아서다.


 마술 라디오라는 그녀의 또 한권의 책이, 알라딘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선정이되고, 또 많은 사람들 역시 찾아주고 있다하니 -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그 또한 다행인 일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