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나오다 -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신동혁 지음 / 북한인권정보센터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북한에 '정치범수용소'라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계속 읽어보고 싶어했던 책이다. 저자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 곳을 탈출하여 중국을 건너 남한으로 온 신동혁이라는 사람이다.

먼저 정치범수용소라는 말은 말 그대로 정치범을 수용하는 곳인데, 한국에서는 감옥과 같은 곳이다. 죄수들을 모아 놓은 감옥 마을이라고 하면 적절하려나..

 

정치범 수용소의 사람들은 북한에서 죄를 지어서 그 곳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 혹은 할아버지,할머니가 죄를 지어서 들어왔고, 자신이 일을 하면서 그 죄를 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옥수수 쌀로 만든 밥과, 염장배추 등으로 만든 국을 먹는다. 밥의 양은 적고, 이 역시 일을 잘 하지 못하면 반으로 줄어든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성노리개가 되기 쉽고(속옷(브래지어)과 생리대가 배급되지 않는다.), 결혼은 '표창결혼'으로 일을 잘하면 담당 보위지도원이 시켜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결혼, 그런 것은 없다. 옷도 몇 벌 주어지지 않고, 잠도 수십명이서 같이 자거나, 방 한칸에서 살거나 한다. 일을 잘 하지 못하면 밥을 굶기 쉽상이고, 매를 맞기도, 공개 처형을 당하는 일도 있다. 일을 하다가 사람이 죽기도 한다.

책 내용에서 꽤 충격적이었던건 선생님이 반 아이들 소지품검사를 하는데, 여자아이의 주머니에서 밀 이삭 5개가 나왔다고 사정없이 때렸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죽었다는 거. 물론 책 내용에 그 선생님의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맞아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밀 이삭 다섯개 가지고 여자아이를 그렇게 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그저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살아왔기 때문에 완전통제구역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의 부모와 조상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를 씻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갖고 있었다.」

 - 37p

 

「그러나 건설 현장에서 누가 죽는다고 해도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다. 단지 나의 목숨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금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할 뿐이다.

발전소 건설 현장은 매일 매일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심판장과 같았다」-149p

 

「아버지도 지하감옥에서 고문을 심하게 받은 듯 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두 다리가 멀쩡하였는데 나왔을 때 보니 오른쪽 다리 아랫부분(정강이)이 밖으로 휘어져 있었다. 고문을 받고 부러진 다리가 잘 붙지 못한 것 같았다.」- 184p

 

「나와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의 교수형이 집행된 직후 형에 대한 공개총살이 집행되었다.」

 - 190p

 

「관리소 생활 기간 중 돈사 시절에 그래도 가장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끼니때 마다 주는 밥의 양은 같았지만 돼지를 키우기 때문에 사료로 쓰는 옥수수를 몰래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10p

 

「나와 같이 일하던 28세 정도 되는 공진수라는 수리공이 자기가 담당하는 재봉공이 재봉기 축을 부러뜨렸다는 이유로 그녀의 얼굴을 발로 마구 때렸는데 그 여자는 결국 입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228p

 

「보위지도원은 곱게 생긴 여자 아이들을 마음대로 갖고 논다. 그래도 그 누구도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다.」-241p

 

「나는 이제 내가 할 일을 정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보위부 14호 관리소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세계가 나서서 한 나라에서 나서 자랐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그들을, 북한의 인권을, 세계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김정일을 심판대에 세우고 그들을 구출하여야 한다.」- 322p

 

나는 내일은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에 갈지,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내 머릿속에 '배고픔'이라는 단어는 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연관이 없는 단어였고, 넘어져서 무릎이라도 까지면 아프다고 징징대기 쉽상이었으며, 따뜻한 부모님 아래서 하고 싶은 거하고 갖고 싶은 걸 가지면서 자랐다. '의식주'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고, 주위에 못 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의식주라는 단어는 누구나 갖추고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론 갑부의 아들,딸이나 외국의 패리스 힐튼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인권이라는 단어에 관해서는, 사람의 권리,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투표를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누군가에게 강요받지 않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빈곤한 국가(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쪽 등의)의 아이들이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음에 가슴아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인권이라는 단어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권이라는 건 무엇보다도 입고, 먹고, 잘 수 있는 그런 권리이다. 내가 생각했던 투표, 교육 등은 좀 더 좁은 의미의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식주가 제대로 갖춰졌느냐이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 속의, 들은 이야기 속의 북한 사람들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인권이라는 게 없었다. 하라니까 하는 거고, 먹을 게 없으니까 굶어죽는 거고...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태어났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고통을 겪고, 나는 이렇게 뭐가 먹고 싶다고, 사고 싶다고 투정부리는게 부끄러워졌다.

 

고등학교 때, 통일을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땐 통일이 되던 말던 나랑은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통일이 되면 물론 땅도 넒어지고, 이산가족 문제도 해결되고, 북한의 지하자원을 쓸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의 힘도 키워지겠지만, 문화적인 차이도 크고, 살아온 방식도 다르기에 많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또 지금 독일의 모습처럼, 남한이 북한을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지금 남한 사람들에게 쓰는 돈을 북한 사람들에게 쓰면서 되려 남한의 못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북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당장은 무리가 있더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 북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그들이 자신의 인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많은 연예인들이 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에 가서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걸 방송에서 보거나, 혹은 신문기사를 통해 읽었다. 참 따뜻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들에게서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북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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