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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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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시는 공부와 같다. 한국의 문학교육에 대해 비꼬는 말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다. 시도 공부도 어렵지만 재미있어서 마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다. 시집을 보고 있는 내게 친구들이 그게 재미있어?”하고 물을 때면 나는 제법 맑게 웃으며 어렵지만 재미있어라고 답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특히 문학시간에 시에 대해 공부할 때면 나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이 시에서 A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법은? 쏟아지는 질문들이 내게로 향할까 무서워 고개 숙였다. 어쩌다 잘못된 을 말하면 부끄러워 견딜 수 가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면 안 되는 걸까. 압도되는 분위기가, 문장 속에 살아 숨 쉬는 감정이, 가슴까지 번지는 진심이 마음에 든다고, 꼭 내 마음 같아 좋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나는 더욱 시에 대한 해석이나 분석을 멀리했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시를 대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생각에 변화를 준 것이 이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이었다.

 

시는 어렵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시에 대한 해석은 어렵기만 하다. 제법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생각에 처음엔 이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또 어떤 말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까. 겁이 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에야 이 책을 손에 들었지만 역시나였다. 무겁고 복잡한 말들의 향연. 쉽게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처음부터 예상했던 만큼 나는 모르는 것은 일단 넘어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해도 공감도 어려운 부분은 지나쳤다. 대신 내 눈을, 그리고 끝내는 마음까지 사로잡는 부분들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바로 시를 보는 눈.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철학으로 시를 보는 그 눈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내게 전달되었다.

 

분명 그 자체만으로 내 가슴에 들어온 시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야니스 리초스도 작가의 연작시 <부재의 형태> 중 하나이다.

 

어린이놀이터에, 작은 요람 하나 비어 있다.

루나 파크에, 목마 하나 기수 없이 서 있다.

나무 아래, 꿈에 잠겨, 그림자 하나 앉아 있다.

빛 속에, 실현되지 않는, 먼 침묵 하나.

그리고 언제나, 목소리들 웃음소리들 한가운데, 간격 하나.

 

연못 위에서, 오리들이 잠시 멈춘다.

아이들의 어깨 위를, 나무들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한 아이가 말없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슬픈 발자국소리만 들린다. 아이는 오지 않는다.

 

(생략)

 

이 시만으로도 아이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겨진 자리의 외로움과 서글픔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여기 이 자리에서 시를 읽는 내게도 전해졌다. 나는 그 느낌을 온전히 가슴에 새겼고, 이게 지금까지 내가 시를 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길고 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명망 있는 작가의 지식과 섞여 어쩌면 시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단순히 어렵다 느끼며 지나쳐버릴 수 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자꾸만 시선이 붙잡힌다. 오랜 세월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한 어른의 지혜와 철학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결코 노란 꽃에 대해 얘기하는 김수영 작가의 시 <꽃잎>에서 조선시대의 노비가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벌써 착란이며, 나무 위에 허공이 있으니 그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벌써 투시자다. 허공은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지 않은가. 꽃나무는 여기 있지만 꽃이 필 자리는 저 허공이 아닌가.(39p)”라는, 한 사람이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는 의미인 것이다.(41p)”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갱피 훑는 여자의 노래에서 여자는 남자를 떠났다. 이 정황의 세부 서술이 여자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자의 떠남이 어느 한 나절의 변덕이 아니라 거의 운명적 필연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세부는 절개 없는 여자를 불운한 여자로 바꿔줄 수도 있다.(57p)”라고, 문학이 저 하찮은 것들의 말이 아니라면 어디서 숭고한 말을 찾을 것인가(60p)”라고 생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 그런 부분들. 작가의 눈은 시를 보다 주의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지만 다 읽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한 말로 나는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도 안 되는 그 부분들이 나와 시 사이를, 나아가 세상과의 사이를 깊게 만들어주었다. 내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치고 심지어는 내 삶마저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게 시였다면, 여기에 오늘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결코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책이자 곱씹고 되씹어서 오랫동안 함께해야 할 책을 만났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여전히 나는 시를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시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시만큼이나 멋진 책을 만난 이 기쁨을 당신과도 나누고 싶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너무 많은 것을 느낀 내가 두서없이 떠들어댄 느낌이 강하지만 그만큼 이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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