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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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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만 접해본 나로서는 과연 그의 에세이는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총 9부로 구성된 이 에세이의 1부 '파뉘르주가 더는 웃기지 않는 날'을 읽었을 때는 정말 몇 번이고 앞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소설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가 무슨 의도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점차 책의 중반부로 접어들자 그제서야 조금씩 그가 말하는 일관된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고, 과연 그가 거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유머란 이런 것이다.

 

유머란 이 세계의 도덕적 모호성을 드러내는,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심판할 수 없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신성한 빛이다. 유머란 인간사의 상대성에 대한 도취요, 확실한 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기이한 즐거움이다. p.50

 

그가 사랑하는 작가 카프카의 '성'이라는 작품을 매개로 그가 생각하는 작품의 구성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와 음악이라는 예술 장르가 얼마나 비슷해질 수 있는지(그 구성과 형식 그리고 역사에까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스트라빈스키에 이어 야나체크까지 이어진다. 하나의 음악 작품과 소설 작품을 전체적인 구성과 문장, 길이와 글자 수(음악의 경우에는 음 길이)로 세분화 시켜 설명하는 그의 분석은 어떤 장인 정신을 표방하는 느낌이 든다. 또한 시대별로 표현하는 예술, 절제하는 예술에 대한 차이와 비교를 쉽게 설명하며 보여준다. 필요할 때면 음표를 보여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재미나게 읽기 시작한 것은 바로 5부 부터였다. 그게 쉽게 읽혀진 이유는 헤밍웨이의 유명한 단편 '흰 코끼리 같은 언덕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만 내가 읽은 작품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헤밍웨이의 이 작품은 내가 재미나게 읽었고, 나도 아리송하게 생각한 부분들이 많았다. 도대체 '그 사건'이 무엇이길래 남녀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것은 '낙태'에 대한 이야기였고, 어쩌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어떤'(모든) 대화이기도 했다. 쿤데라의 상상력은 여기서 여실히 보여준다. 단편을 읽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 그것은 바로 모호함 속에서 뻗어나가는 상상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보편적이고도 구체적인 혹은 추상적인 이 대화들을 읽어 내려가며 각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명확하게 헤밍웨이가 무엇을 의미하며 써내려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보고 느끼며 상상하는 것은 각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론이 모호했던 많은 단편들, 짧기 때문에 표현해낼 수 있었던 애매함들을 이제야 나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했다.

 

 

쿤데라는 좋아하는 작가(작품)와 작곡가(음악)들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며 그들의 본질을 파악해내려고 한다. 또한 주변의 많은 이들이 그들의 본질을 흐트려 놓고, 그들이 주장하려고 했던 것들에 반하는 작품 해석에 대한 애석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이 흩뿌려 놓은 유언들은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고, 더이상 남아 있는 자들이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유언이라는 것은, 죽은 뒤에 남겨진 것이라는 것은 더이상 살아있는 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아 아닌 것이다. 그 '배신 당한 유언들'을 펼쳐 보임으로써 끊임없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쿤데라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가 마련해 놓은 작품의 세계 속으로 푸욱 들어가게 만든다. 그것은 '느린 독서' 그러니까 두 번, 세 번을 통한 독서를 통해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한다. 단 한 번의 것으로는 쿤데라의 에세이조차도 그의 뜻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을 거라는 예언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배신 당한 유언들'을 앍고 싶은가. 그렇다면 재독을 권한다.

끊임없는 재독만이 당신이 진짜 알고 싶은 작품에 대한 본질을 알게 해줄 것이다.

쿤데라의 성찰 속으로 빠져 들어 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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