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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삶으로부터의 긍정이란 어디서부터 샘솟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버려진 물건들을 찍는 마일스 헬러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선셋파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게 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각기 다르지만 뭔가 하나쯤은 헐빈한 느낌의 젊은이들. 그들의 조합은 꽤나 훌륭해 보였다. 거기다 각 장마다 달라지는 시선으로 그들의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구성 방식을 취했고, 마지막 장에는 모두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마일스는 스물 한 살에 집을 나왔다. 자신의 의붓형인 보비와 말다툼을 하다 사고로 죽어버리는 순간, 그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를 듣다가, 자신이 사라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여겨져 집을 나온다. 약 7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대학 중퇴자, 무기력함, 삶의 무의미함.... 그러한 기운들로 둘러싸인 그에게 삶의 빛이 흘러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필라'를 만난 것. 필라는 어린 소녀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었고, 마일스는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빠지지만 필라의 언니는 미성년인 필라와 사귀는 마일스에게 부당한 요구들을 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선셋파크'로 향하게 된다.
과거의 자신과의 유일한 끈인 '빙 네이선'은 마일스의 친구이다. 그는 마일스에게 '선셋파크'로 올 것을 권유하고, 그들은 불법적으로 비워진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앨리스와 엘렌도 그들과 합류하게 된다. 그들은 각자 가장 독립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나간다. 각자 맡은 집안일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그 외의 시간들은 혼자만의 시간들로 채우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고민하는 앨리스는 이제 더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빙은 실은 오래전부터 마일스를 사랑으로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마일스의 삶은 필라라는 존재로 인해 완전히 탈바꿈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온전히 자신의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것을 의미했다. 오로지 자신의 생을 유지하는 것에만 쏟았다면 이제는 필라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원조를 해주는 역할을 기꺼이 자처한 것이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표인 것처럼.
빙 네이선은 7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마일스와 편지를 주고 받은 모든 내용들을 그들의 부모님께 전달했다. 그들의 부모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뜻 그를 찾으러 가지 않았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모리스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다니며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때까지 기다렸다. 꼭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때, 마일스는 모리스에게 연락했고, 부재중이란 응답을 받게 되어 자신의 생모인 메리-리를 먼저 만나게 된다. 배우로 살고 있는, 마일스가 태어난 지 6개월만에 마일스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간 여자, 메리-리.
그러던 어느 날, 선셋파크에서 나가달라는 통보 편지가 오기 시작하고,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불법 침입자이자 무단 거주자인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빙 네이선은 경찰들에게 저항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잡이고, 마일스는 피해 있다가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모든 게 끝장 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가득한 그는 온통 도망갈 생각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수하라고, 뭐든 새로 시작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남긴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마일스는 그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난 7년 반 간의 시간들,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었던 자신의 손, 그리고 아버지와 필라, 자신의 생모와 키워준 윌라를 실망시키게 될 거란 생각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함께 찾아왔다. 삶을 긍정하게 되는 힘,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하며 도망다니는 것이 아니라 맞닥뜨리는 것이라는 알게 된 것 같은 그런 상쾌한 느낌의 희망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