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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소설 속에는 언제나 어떤 상황이 펼쳐진다. 가끔은 공간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잘 묘사된 공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행동과 대화와 감정들. 그것들은 충분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독자가 마치 그 속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만 있다면.
나는 등장인물이 많은 소설을 꽤나 힘들어 하는 독자다. 거기다 다른 나라 언어로 된 익숙하지 않은 긴 이름들도 여전히 낯설다. 책장을 다 덮고도 다 외울 수 없는 이름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그 속에 펼쳐진 그들의 삶이다. 물론 그들에게 펼쳐진 일상은 지중해다. 지중해 속에서 짠내를 맡으면서, 파도와 싸우면서 항해한다. 때론 분노로 끓어오르고, 때론 추억으로 시간을 때우고, 때로는 지독한 그리움과 싸움을 한다. 어쩌면 그곳은 갇힌 공간이다. 더이상 나아가지 않는 일상이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기억들, 소중한 사람들, 가슴 속에 간직한 꿈과 희망들은 자주 사람들을 괴롭힌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다. 가까운 다른 도시에 잠깐씩 여행을 간 기억은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벗어나 일상처럼 살아본 일이 없다. 그래서 다른 공간, 내가 가보지 못한 색다른 공간이 배경이 되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속에서 한껏 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준비한다. 완전히 빠져들 때쯤 이야기는 끝이 난다. 책장을 덮으면 한동안 그 여운들로 가득해진다. 눈을 감거나, 창문을 열고 풍경을 바라볼 때면 언제나 나는 책 속의 어느 장소에 가 있는 듯 하다.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하얀 풍랑들,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떠오르는 태양빛, 그 사이사이로 비춰드는 햇빛,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의 잔물결..... 이따금씩 떠오르는 물보라..... 나는 그곳을 항해하고 있는 한 명의 밀수꾼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어떤 시간들을 그리워한다. 나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미래의 어떤 시간들을 갈망한다.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떠나기를. 여기가 아닌 거기로 훌쩍 갈 수 있기를. 이 모든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멀리 떠나가기를. 금세 외로워지고, 그리워질 걸 알지만. 그렇게 일상 속에서 뭔가를 그리워하고, 떠난 후에는 그 일상을 그리워하는 게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게 나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지독스럽게 술을 마시기도 했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으며,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가슴 속에 열망을 따뜻하게 쓰다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중해의 푸르른 물결을 느끼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그의 묘사에 빠져들었다.
가끔 떠나고 싶은 다른 세상 속으로 책을 통해 달려 들어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